[기자수첩] 첩보소설 같은 ‘카슈끄지의 죽음’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18-10-22 16:12 수정일 2018-10-22 22:27 발행일 2018-10-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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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국제부 기자

“SF첩보소설이거나 애플워치 광고 아닌가?”

최근에 만난 한 터키인은 친정부 일간지 ‘사바흐’가 자말 카슈끄지의 피살 영상이 그가 찬 애플워치를 통해 확보됐다고 보도하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카슈끄지 후폭풍’이 ‘언론의 자유’와 ‘인권 문제’로 읽히기 보단 ‘범죄+첩보소설’ 처럼 보이는 이유가 뭘까.

이번 논란의 핵심은 언론의 자유가 없기는 매한가지인 사우디아라비아(언론자유도 169위)와 터키(157위) 그 사이 어디쯤에선가 ‘반(反) 빈살만’ 언론인 한 사람이 유명(幽明)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모든 시선이 배후가 누구이며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쏠려 있지만, 터키 당국은 결정적 증거가 될 영상 파일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치 영상이 터키 도·감청 기술로 확보됐다는 일각의 관측을 뒷받침하듯 미국과 언론에 정보를 흘리면서 국제사회 여론을 형성해 사우디를 우회 압박하는 것은 그래서 터키입장에선 가능한 선택지일 수 있다.

사우디가 카슈끄지 실종 18일 만에 내놓은, 외교공관내 15대 1의 주먹싸움이 사망 원인이라는 궁색한 해명은 역설적으로 터키가 영상을 공개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사우디 역시 ‘우발적 사고’라는 주장을 입증할 결정적 단서인 시신을 공개 않고 있다. 이미 토막 난 시신이라는 터키 주장을 뒷받침하듯 말이다. 오히려 사우디가 피살을 인정한 것은 ‘시체 없는 사건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공개되지 않는 영상과 카슈끄지 시신이 진실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사건 규명의 목소리를 높이는 터키와 살해 의혹을 강력 부인하는 사우디는 어느 시점에 또 다른 절충안을 찾게 되지 않을까.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정말 공상과학첩보소설 같은 일이 돼 버렸다.

김수환 국제부 기자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