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국립오페라단 ‘헨젤과 그레텔’, 잔혹동화 아닌 현실공감과 심연으로의 여정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8-09-28 19:00 수정일 2018-09-28 20:13 발행일 2018-09-2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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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27일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이 오픈스튜디오를 진행했다.(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우리가 오늘날 ‘잔혹동화’라고 일컫는 내용들은 대개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가난한 나무꾼 아버지, 의붓어머니, 반복되는 버려짐, 노동…. 어린 남매가 성장하기에 그리 마땅한 환경은 아니다. 그림형제(Bruder Grimm)의 ‘헨젤과 그레텔’(Hansel and Gretel)은 최근 들어 잔혹동화로 변주되기도 한다. 27일 오픈스튜디오를 진행한 국립오페라단의 ‘헨젤과 그레텔’(10월 9~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대해 크리스티안 파데(Christian Pade) 연출은 “잔혹동화가 아닌 당대의 현실 반영”이라고 밝혔다.

헨체의 ‘젊은 연인들을 위한 엘레지’, 베토벤의 ‘피델리오’, 브리튼의 ‘나사의 회전’,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차이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창작오페라 ‘칼리굴라’, ‘보리스 고두노프’ ‘죽음의 꽃’ 등 파데 연출은 대중에게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닌 작품들을 주로 작업한 데 대해 “원래 전공은 연극 연출이다. 그런 데서 오는 남다른 시각”이라며 “현대적 연출”이라고 표현했다.

“현대주의적인 것과 현대적인 연출은 구별됩니다. 현대주의적인 작품은 모든 것이 현대의 것들로 구성돼요. 현대적인 오페라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알아듣고 공감하게 하는 작업입니다. 오페라 장르 안에서의 혁명은 제몫이 아닙니다. 제 소명은 작품 속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쉽게 전개해서 들려드리는 것이죠. ‘헨젤과 그레텔’에도 전통적인 노래들, 오래 명맥을 지키며 불린 노래들이 많아요. 이 모든 것들을 아울러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죠.”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크리스티안 파데 연출(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그리곤 “그런 의미에서 고고학의 발굴작업과 비슷하다. 위부터 파고 들어가면 본질에 다가가게 된다”며 “당시에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로 만들어졌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는지를 찾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부연했다. ◇크리스티안 파데 연출 “의도된 잔혹성 아닌 시대의 반영”

“동화 ‘헨젤과 그레텔’ 속 스토리가 현실이었던 시대가 실제로 있었어요. 이에 독자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의도적인 잔혹성이 아닙니다. 극도의 빈곤으로 인한 자녀의 유기(숲에 갖다 버리는 일)는 ‘헨젤과 그레텔’ 시대에 비교적 흔한 일이었죠.”

이어 원작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대해서는 “독일에서는 누구나 아는 작품”이라며 “독일인들에게 사랑받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독일인 정서와 잘 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숲은 사랑하기도 하고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 집을 둘러싼 것이면서도 뭔가 신비스러운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공연되는 ‘헨젤과 그레텔’은 바그너의 계보를 잇는 독일 작곡가 엥겔베르트 훔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의 3막짜리 오페라다. 1893년 독일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훔퍼딩크의 여동생 아델하이트 베테(Adelheid Wette)가 대본을 썼다. 이 대본의 특징은 그림형제의 초판처럼 의붓어머니 대신 친어머니를 등장시킨 것이다.

파데 연출은 “오페라 대본을 쓴 훔퍼딩크의 여동생 아델하이트가 동화의 내용이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줄 것을 두려워해 그림형제의 동화 속 의붓어머니를 친어머니로 바꿨다”며 “아델하이트가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대본 집필 당시 참고하며 토대로 삼은 판본은 작가 베히슈타인이 것으로, 여기서 이미 의붓어머니는 친어머니로 바뀌어 있다”고 설명했다.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창작진과 출연진(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1막은 집안, 부엌에서의 장면들입니다. 훔퍼딩크가 그리는 가정, 사회적 요소들이 담겼죠. 현재의 세상도 그랬지만 당시에는 불평등이 팽배했어요. 남매가 속한 가정 역시 동화적인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힘겨운 노동, 술, 폭력 등 굉장히 현실적인 가정의 모습들로 가득하죠. 동화이고 아이들 오페라여서 배제할 수도 있는 요소들이지만 빼먹지 않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2막에 대해서는 “가정에서 노동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열매를 따오라는 지령을 받고 숲으로 간다”며 “숲에 간다는 것 자체가 경계선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익숙했던 집안에서 벗어나 낯선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서 경계선은 단순한 지역적 경계가 아닌 심리적인 차원이 굉장히 강합니다. 숲으로 들어가 모르는 것을 만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이 성장이죠. 더불어 숲은 스스로가 가진 의식의 심연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숲과 경계, 성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파데 연출은 독일의 심리학자 브루노 베델하임(Bruno Bettelheim)의 “아이들은 악몽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글귀를 인용하며 “새 의식 속으로 들어가 여러 단계들을 넘어서는 과정, 새로운 것을 극복해내는 과정이 성장”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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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포스터(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숲속에 남겨진 3막의 아이들은 결국 통제력 잃게 되고 자기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립니다. 몰랐던 것을 이겨냄으로서 극 시작에서의 그저 어리고 순진난만하던 어린이가 아닌 작은 어른으로 성장하죠. 이걸로 끝이 아니에요. 이런 성장과정을 무수히 반복해야하죠. 성장 과정은 끝이 없기 때문에 시련을 극복해야하는 상황은 계속 올 겁니다.” ◇지휘자 피네건 다우니 디어 “어린이스러운 단순함과 다채로움의 공존”오페라 ‘헨젤과 그리텔’에는 파데 연출을 비롯해 명장 안토니오 파파노의 수제자인 젊은 지휘자 피네건 다우니 디어(Finnegan Downie Dear), 무대·의상 디자이너 알렉산더 린틀(Alexander Lintl)이 함께 한다. 헨젤은 유스티나 그린기테(Justina Gringyte)와 양계화(이하 팀별), 그레텔은 캐슬린 킴과 한은혜, 남매의 아빠 페터는 양준모·이역, 엄마 게르트루트는 정수연·임은경, 마녀는 정제윤·민현기가 번갈아 연기한다.

지휘자 피네건은 ‘헨젤과 그레텔’의 음악에 대해 “기적적인 작품”이라며 “어른과 아이가 모두 사랑하는 오페라는 많지 않다. 지휘자로서 어떤 음악적 측면이 있길래 모두에게 사랑받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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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지휘자 피네건 다우니 디어(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값싼 트릭이나 마술에 현혹되기 보다는 얼마나 직접적으로 소통하는지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와 어른에게 사랑받는 방법은 다르지 않아요. 솔직하고 순수하면서도 위험하고 유혹적인 요소도 있죠.”

훔퍼딩크는 바그너의 제자로 닮은 듯 다른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피네건 지휘자는 “훔퍼디움은 스승인 바그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뛰어난 스승을 족쇄처럼 느끼기도 했고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스승에 대한 사랑을 담아 따라 하기도 하는데 마녀캐릭터에서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마카롱을 활용한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 미니어처(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이어 “‘헨젤과 그레텔’은 음악의 여러 섹션들을 아우르고 있다. 바그너스럽게 넘버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으면서도 어우러진다”며 “어린이스러운 단순함과 다채로운 것들을 아우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무대·의상 디자이너 알렉산더 린틀 “아주 특별한 과자집”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알렉산더 린틀은 “이 동화가 오페라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는 것에서 출발했다. ‘라보엠’ ‘라트라비아타’ 등의 무대가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헨젤과 그레텔’은 매우 특별한 무대가 필요했다”고 전했다. 

이어 “아이들이 동경하고 갈망하는 것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그 공존을 이 작품 안에 꼭 담고 싶었다”고 디자인 의도를 덧붙였다.

“어둡고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서 숲으로 넘어가는 장면에 집중했어요. 헨젤과 그레텔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죠. 숲에 들어오면 예상보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면서 계속해서 많은 장면들이 생겨나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의상·무대 디자이너 알렉산더 린틀(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헨젤과 그레텔’의 볼거리 중 최고는 단연 과자집이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는 “우리 무대에도 놀랄 만한 과자집이 있다. ‘과자집’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집이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 먹고 싶을 만큼의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번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은 프랑스 디저트 마카롱을 활용한다는 전언이다.

“마녀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요. 시각적으로도 극적으로도 많은 놀라움이 생길 겁니다. 아이들이 악몽에서 깨어나 보는 장면 같은 것들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것을 대면했을 때 가질지 말지 고민하다가 넘어가는 지점이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