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93세 할머니가 남긴 '슬로 라이프', 세계가 열광하다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8-09-05 07:00 수정일 2018-09-05 21:54 발행일 2018-09-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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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3일 타샤 튜더의 다큐멘터리 개봉
애견,요리법, 정원 가꾸기등 국내 관련 책 관심 폭주
TashaTudor

지난 2008년 93세 동화작가가 숨졌다. 천수를 다한 평범한 할머니의 죽음이 아니었다.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 100여권의 글과 삽화를 발표한 워킹맘이기도 했던 타샤 튜더는 미국 버몬트 주 30만 평의 대지를 40년간 꾸려온 정원사기도 했다. 

평생 꽃이 지지 않는 정원을 가꾸고 빈티지한 취향으로 사랑 받아온 전세계 주부들의 워너비 타샤 튜터. 그의 마지막 10년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13일 공개된다. 화려한 삶에 가려진 고뇌와 명암을 다루기 보다 ‘느린 삶’의 원조로서 잔잔한, 삶에 충실한 일상은 보는 내내 따듯한 온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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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윌북)

그래서일까. 영화 ‘타샤 튜더’를 기점으로 국내에 출시됐던 책들이 다시금 사랑받고 있다.

인형과 가족들의 일상과 음식, 키우는 애완견까지 다양한 삶을 조명한 책을 살펴봤다.   

◇ 이렇게 신나는 사계절 이라니 ‘타샤의 열두달’

평생을 자연 속에서 살며 산골 농가에서 네 아이들을 키워낸 타샤 튜더는 이 책을 통해 따듯한 동심을 전한다.

손으로 직접 그린 ‘타샤의 열두달’은 56페이지로 20장이 겨우 넘는다. 그래서 더욱 열독하게 되지만 도리어 그 세세한 붓터치와 색감을 느끼다 보면 한 장을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다.

엄마이자 작가인 저자는 아이들이 사계절이 주는 선물을 누리며 보낸 1년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낮이 점점 환해지며 봄을 기다리게 하는 2월, 새들이 돌아오고 소나기가 내리는 4월, 제비가 남쪽으로 날아가며 가을이 가까워오는 8월, 호박이 익고 할로윈데이를 기다리는 10월…. 자연을 사랑한 작가답게 타샤는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열두 달의 개념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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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열두달.(사진제공=월북)

타샤 가족의 시골 생활을 정지 화면으로 담은 듯한 삽화는 저마다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캐러멜을 쭉쭉 늘이며 즐거워하는 장난꾸러기들, 양동이에 둥둥 떠 있는 사과를 입으로 건져 올리며 깔깔대는 아이들. 

동생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잔뜩 모아놓은 낙엽을 비 마냥 뿌려주는 다정한 오누이의 모습은 장난감 없이도 얼마나 신나게 놀 수 있는지, 자연이 아이들에게 어떤 행복을 선사하는지를 보여준다.

◇12년을 기다린 정원, 그 안을 뛰어놓는 반려견 ‘타샤의 정원’ ‘타샤와 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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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타샤 튜더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56세에 정원 가꾸기에 도전하며 지상 낙원을 창조한 원예가인 그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어 쓰는 자연주의자기도 했다. 

특히 ‘타샤의 정원’은 국내 독자들이 가장 애정하는 책이기도 하다. 일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 비밀을 감춘 이 책은 지난해 리커버판으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환상적인 정원이 절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타샤의 남다른 애정과 노동이 동반된 정원은 최근 열풍을 몰고 온 킨포크와 휘게 라이프의 원조기도 하다.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화답하는 정원에 대해 그는 확고한 행복론을 전한다.

“우울하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요. 좋아하는 걸 해야 해요. 아름다운 정원은 기쁨을 줍니다. 무수한 데이지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장면을 상상해 봐요. 따로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했던 타샤 튜더는 1957년 영국에서 영국왕실 견이기도 했던 코기를 만난 후 50여 년을 함께 생활한다. 반려견이자 첫 코기인 미스터 B와 새끼들의 일상은 대표적인 그림책 ‘코기빌 마을 축제’, ‘코기빌 납치 대소동’,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등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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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스무 마리의 코기 견을 키웠던 타샤 튜더.(사진제공=아인스하우스)

이 책은 타샤와 코기의 첫 만남에서부터 코기가 타샤 집안의 가족들과 나누었던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평생 스무 마리가 넘는 귀여운 코기 강아지들을 키웠던 일상이 사진과 그림으로 담긴 ‘타샤와 코기’는 특히 국내 1000만명이 넘는 애완견들의 취향을 저격하며 입소문이 난 상태다.  

◇타고난 금수저보다 독립적인 여성으로! ‘타샤의 말’

집안 내력은 화려하다. 대대로 마크 트웨인, 아인슈타인, 에머슨 등 걸출한 인물들이 출입하는 미국 명문가였다.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던 타샤는 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고 그 집의 자유로운 가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스물세 살에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이 출간되면서 타샤의 전통적인 그림은 세상에 알려졌다. 남편과 이혼한 뒤 그림을 그리며 혼자 4명의 아이들을 키웠던 타샤는 50대 중반에서야 인세로 산골 땅을 마련해 오랫동안 원하던 정원 가꾸기에 나섰다.

 

타샤 튜더의 자적전 에세이 ‘타샤의 말’ 37쪽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내 삽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아, 본인의 창의력에 흠뻑 사로잡혀 계시는군요’라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상업적인 화가고, 쭉 책 작업을 한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 내 집에 늑대가 얼씬대지 못하게 하고, 구근도 넉넉히 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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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말.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오래된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는 타샤 튜더는 골동품 수집가이기도 하다.

평소 수십 년간 모은 약 200여 벌의 골동품 의상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830년대 의상 컬렉션으로 불리며 록펠러재단이 운영하는 윌리엄스버그 박물관에 기증된 상태다. 

타샤의 또 하나 고풍스러운 취미는 인형 만들기다. 직접 만들고 꾸민 3층 인형의 집은 분신인 엠마와 새디어스 부부가 입주(?)해 살고 있다. 손톱만 한 책들과 골동품 찻잔들, 골동품 가구들이 빛을 발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음식 레시피도 책으로 나왔다. ‘타샤의 식탁’에는 백지 노트에 손으로 직접 메모한 조리법들이 담겨있다. 평소 인생 철학이 묻어있어서 인지 20분만에 뚝딱 나오는 음식은 없다.

인생은 짧으니 맘껏 즐기고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 타샤는 오랜 시간 공들여 ‘하는 즐거움’을 강조한다. 이국적인 맛보다 진국이 우러난 스프와 미트 로프, 고조할머니의 옥수수빵까지 세대를 걸친 요리법이 눈길을 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