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헌법에세이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 “나는 헌법 전도사”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18-08-29 07:00 수정일 2018-08-29 07:00 발행일 2018-08-2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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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 (사진제공=MBC)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2016년 어느 날 조간신문을 읽던 방송인 김제동(44)은 한 칼럼에 시선이 끌렸다.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원작자인 문유석 판사가 헌법 37조 1항을 인용해 쓴 칼럼이었다. 시쳇말로 헌법에 꽂혔다. 마치 연애편지의 한 구절을 읽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댔다.

“그때 헌법을 읽어보자 마음 먹었어요. 대단하다고요? 1조부터 130조까지 다 읽는데 40분밖에 안 걸렸어요. 하하”

최근 헌법에세이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를 쓴 김제동은 ‘브릿지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 책은 헌법에 대한 나의 독후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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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1만 6000원 | 사진제공=나무의 마음

“헌법은 정말 훌륭한 책이자 문장이에요. 독후감을 쓰고 싶은 책이 흔치 않잖아요. 헌법은 1조부터 37조까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얘기하죠. 38조와 39조는 조세와 국방의 의무, 40조부터는 국회에 대한 조항, 66조부터가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조항이에요. 1조부터 39조까지 다 읽는데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김제동은 2016년 헌법을 독파한 뒤 각종 강연에서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는 ‘김제동 헌법 강의’와 관련된 동영상이 화제다. 일각에서는 그의 유창한 언변과 지식에 놀랐다는 반응이고 다른 쪽에서는 “개그맨이 헌법을 왜 읽냐”, “헌법 조무사”라는 조롱 섞인 힐난도 있다.

“연예인이 왜 헌법을 읽느냐고요? 그건 ‘학생이 공부 안하고 헌법 왜 읽어? 시민이 헌법 볼 필요가 있나?’ 라는 질문과 같아요. 헌법이 법학자, 검사, 변호사, 판사 같은 법률전문가만 읽는 글은 아니거든요. 그런 편견이야말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경시하는 태도죠.”

헌법독후감을 표방하지만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는 단순히 헌법에 대한 오마주는 아니다. 김제동은 이 책을 쓰기 위해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 알비삭스의 ‘블루드레스’ 등 10여권의 헌법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에드윈 캐머런과는 출판사를 통해 직접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제동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이 상대적으로 늦게 제정됐는데 세계 헌법 흐름의 좋은 점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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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 (사진제공=쇼노트)

김제동은 책 속에서 법치국가의 국민은 ‘슈퍼갑’이며 약자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가 헌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문에도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정작 헌법은 필요한 국민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며 “좌우와 진보·보수를 떠나 헌법이 우리 국민의 권리라는 걸 인지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버팀목이자 지지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진 사법농단이나 정치 검찰에 대해서도 “내가 말할 부분이 아니다”라면서도 “헌법이 우리 것인데 자기들 것인냥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점과 해결책도 헌법에 있어요. 때로 사회를 반영하지 못하는 법 때문에 개헌 이야기도 나오고 있잖아요. 헌법은 헌법정신으로 해석하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개정돼야 해요. 그게 사회가 나아가는 과정이죠.”

김제동은 인터뷰 말미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비밀의 숲’ 대사를 언급했다.

“‘비밀의 숲’ 마지막 대사가 ‘헌법이 있는 한 우리는 싸울 수 있다’입니다. 법이라고 하면 늘 시민을 통제하는 테두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헌법은 시민이라는 권력자가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 국가가 할 일을 적어놓은 겁니다. 얼마나 짜릿합니까.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헌법에 대한 자신만의 독후감을 쓰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