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가을개봉 애니메이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신작 소설 '밤의 괴물', 스미노 요루가 전하는 언어의 힘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8-06-27 07:00 수정일 2018-06-27 12:25 발행일 2018-06-27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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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 다시 똑같은 꿈을 꾸었어' 등의 유명 작가 스미노 요루(住野よる)
가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애니메이션 한국 개봉 앞두고 발표한 신작 '밤의 괴물'(よるのばけもの)
주제가로 생각한 사사키 료스케 '월면의 풀', 주인공 이름 사쓰키는 영산홍, 꽃말은 서로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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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君の膵臟をたべたい)

동명 소설로 데뷔한 스미노 요루(住野よる) 작가는 언뜻 엽기적으로 들릴 수 있는, 자칫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물쯤으로 가늠케 하는 이 말이 얼마나 애틋하고 눈물 나게 할 수 있는지를 입증했다. 그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지난해 츠키 카와쇼 감독, 하마베 미나미, 키타무라 타쿠미, 키타가와 케이코, 오구리 슌 등 주연의 영화에 이어 올 가을 애니메이션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극중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나(시가 하루키)와 교내 인기 최고의 사쿠라 야마우치가 비밀을 공유하고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애틋한 감성으로 풀어갔던 이 작품의 묘미는 독특한 언어의 활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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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개봉할스미노 요루의 애니메이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사진제공= NEW)

유혈낭자한 파격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에서 흩날리는 벚꽃 앞에 선 아련하고 풋풋한 고교생들을 떠올리게 하는 힘.

내가 사쿠라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인 동시에 사쿠라의 유언이자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을 비롯한

일상적인 듯 독특한 언어 구사는 스미노 요루의 최고 덕목이다.  

“공병(共病)문고” “친한 사이 소년” “책이 미아가 되면 불쌍하다고 말하자” “책도 보물찾기하듯 자신을 찾아주는 걸 좋아할 거야”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먹게 해줄게” “우연이 아니야…네가 해온 선택과 내가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한거야” 등 스쳐 지나는 듯한 말 속에 눈물겨운 애틋함이 묻어난다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애니메이션 개봉 소식과 더불어 출간된 스미노 요루 신작 ‘밤의 괴물’(よるのばけもの)은 좀 더 본격적인 언어 활용도를 보이는 작품이다.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모두가 무시하는데도 꾸준히 큰 소리로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말을 건네는 이상한 말투의 왕따 소녀 야노 사쓰키, 밤마다 검은 알갱이가 폭주해 사물함을 뒤지는 괴물로 변신하는 착실한 나, ‘앗치’로 불리는 아다치가 ‘밤의 쉬는 시간’ 비밀을 공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료의식으로 똘똘 뭉쳐 ‘절대 악’으로 정해놓고 대하는 아이들에게도 빙긋이 웃어 보이는 야노를 깊은 밤 학교에서 괴물의 모습으로 만난 앗치는 “이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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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노 요루 신작 ‘밤의 괴물’(사진=소미미디어 '밤의 괴물' 북트레일러 캡처)

이상한 데서 음절이 끊기고 끝에 꼭꼭 악센트를 붙이는 말투도, 아플 게 분명한데도 빙긋 짓는 웃음도, 분명하게 휘두른 물리적 폭력과 아끼는 소중한 토토로 열쇠고리를 찢어 발기는 짓 사이에서 고민하게 하는 기괴한 행동도 분명 이상하다. 

“모차르트파? 비발디파?” “청개구리파? 뿔개구리파?” “파이어파? 메라파?” “코난파? 김전일파?” “극장파? DVD파?” “라퓨타파? 나우시카파?”

낮의 교실에서 동료의식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에게 절대 악으로 내몰리는 야노는 괴물로 변신해 밤마다 학교를 찾는 앗치에게 양자택일의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앗치는 “베토벤파” “개구리 왕눈이파” “인센디오파” “네로우파” “토토로파” 등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언어의 묘미를 한껏 살린 두 사람의 대화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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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괴물 | 스미노 요루 지음 |소미미디어 출간(사진제공=소미미디어)

눈치가 없기는 매한가지인데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 미도리카와와 그를 괴롭히는 야노, 울고 있는 미도리카와 옆에서 웃고 있는 야노, 물리적인 폭력과 소중한 무언가를 파괴하는 일….

기묘한 풍경 속에서 앗치는 물론 읽는 이마저도 무엇이 더 악하고 선한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 어려워지는 그 양자택일은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내 일상의 풍경이 되고 내 속에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을 파고 든다.

“나하고는 너무 다른 앗치는 그럼 누구하고 똑같은데?”

야노의 물음처럼 그래서 ‘이상하다’는 당연하다. 무서우면 비명을 지르고 혼비백산 도망을 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앗치처럼 괴물로 변하기도, 야노처럼 억지로 빙긋이 웃어버리기도 한다.

명확한 감정 앞에서도 표현이 달라지는 인간에게 양자택일이 어려운 건 당연하다. 야노를 무시하지 못하는 밤의 앗치도, 모두에게 미움을 살까 전전긍긍하는 낮의 앗치도, 결정하지 못하고 께름칙해하며 혼란을 겪는 앗치도 모두 앗치다.

스스로를 괴물로 인식하는 밤, 진짜 괴물은 무엇인가에 대한 숙고, 동료의식의 배반, ‘야노’파로의 돌아섬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미리 정해놓은 나를 스스로라고 믿었던 착각에서 깨어나는 순간 앗치는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이야기도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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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노 요루 신작 ‘밤의 괴물’(사진=소미미디어 '밤의 괴물' 북트레일러 캡처)

왕따 당사자의 고통, 따돌리는 이들이 찾아낸 정당한 이유는 결국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상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오류들의 유기체다. “안녕”이라는 인사 한마디, 지우개를 주워주는 무의식적인 행동 등이 동료의식에서 어긋나는 것이라 여기는 데서 기인한 집단 따돌림은 그래서 잔혹하다. 

누군가에게는 진짜 악한 모습을 숨기는 기회를 주고 누군가에는 깊은 자책감에 시달리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앗치가 깨달은 “나름대로 어긋나는 생각 중에 생각해낸 답”이 모두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일도 다른 사람의 사연일 때와 내 일이 됐을 때는 분명 다르다.

“왜 인간으로 둔갑했어?” “왜 괴물이 됐어?”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물음은 스미노 요루가 언어의 묘한 리듬 속에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다. 책의 마지막에는 저자 스미노 요루와의 인터뷰를 통해 ‘밤의 괴물’ 주제가로 생각했던 사사키 료스케의 ‘월면의 풀’, 주인공 야노의 이름인 사쓰키가 영산홍이라는 꽃 이름이며 꽃말이 ‘서로 돕기’라는 사실 등의 힌트들을 귀띔한다. 올 가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애니메이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더불어 ‘밤의 괴물’이 스미노 요루 특유의 언어적 묘미를 선사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