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 이란 말’ 출간한 장애엄마 10년차 류승연씨 "우리 아들은 장長 애愛 인人, 오래 사랑받을 아이"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8-04-20 07:00 수정일 2018-04-20 11:38 발행일 2018-04-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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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기자 출신 류승연씨 "아들 덕분에 '장애아 엄마'라서 고개숙이지 않겠다는 고마운 마음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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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각이 달라지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행복도는 올라갔어요. 10점 만점에 9점? 속으로 ‘엄마보다 먼저 가야 돼.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라며 뽀뽀세례를 퍼붓죠.”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 자식을 앞세우는 슬픔은 겪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류승연(42·사진) 작가는 반대다. 조심스럽게 엄마인 자신보다 보다 아들 동환이가 먼저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미소지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었다. 풍족한 부모님 덕에 대치동에서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잡지사를 거쳐 사회부와 정치부를 출입했다. 스스로 ‘외모만 보고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비주얼 갑(?)인 남편을 만나 쌍둥이를 임신하는 행복을 누렸다. 출산 후 아이를 봐줄 사람도 있겠다, 40대에 데스크를 거쳐 50대 편집국장의 길이 열려 있었다.

사양합니다,동네바보형이라는 말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류승연 저||1만5000원.(사진제공=푸른숲)

전직 기자에서 이제는 작가로 거듭난 그는 최근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출간했다. 

7개월만에 조산한 쌍둥이 중 아들인 동환이는 누나인 수인이보다 30분 늦게 태어났다. 대부분 쌍둥이는 길어야 2~3분 차이. 3살이 될 때까지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양가 부모들은 ‘조금 늦된 아이들이 있다’며 걷기나 옹알이가 늦은 동환이에 대한 류 작가 부부의 걱정을 토닥였다.

“병원에서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게 4살이에요. 알고보니 태어날 때 뇌에 충격이 있었는데 그걸 발견하지 못한 거죠. 사실 장애를 가진 엄마들은 아이를 돌보는 외의 것에 에너지를 쓰면 나쁜 엄마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있어요. 하지만 출판사에서 제 글을 보고 ‘장애극복 수기나 장애아를 둔 부모의 에세이가 아니어서 책으로 내고 싶다’란 연락이 왔을 때 안 낼 이유가 없었어요. 저 역시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고 이 책은 일반인들을 겨냥한 장애아들을 둔 ‘내 이야기’니까요.”

이 책은 온라인 매체 ‘더 퍼스트미디어’에 2년간 연재된 이야기를 묶은 결과물이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기 보다 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같은 또래의 아이를 둔 부모 그리고 허술한 장애인 지원 제도의 민낯을 건들인다. 일반 학교에 다녔던 동환이는 초등학교 2학년을 끝으로 특수학교로 옮겼다.

류 작가는 책을 통해 장애아와 같은 반이 된 부모의 이기심, 특수반 교사 한명이 많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과도한 업무 그리고 서류상으로만 급급한 재활 시스템의 병폐 등을 가감없이 전달하며 ‘장애인이 우리의 삶을 스쳐 지나간 불행한 타인’으로 만드는 현실을 꼬집는다.

“모든 아이에게 학교는 사회의 첫 경험이잖아요. 장애아든 일반아이든 그 아이의 품위와 자존감을 지켜줘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죠. 의외로 아이들의 인권의식은 학교에서 만난 ‘첫 어른’에 의해 정해져요. 장애아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평등하게 다뤄졌으면 하는 게 부모의 마음인데 현실을 달랐어요. 장애는 숨겨지지 않아요. 사랑이나 기침과 같죠. 장애를 숨기거나 장애아를 둔 부모가 죄인처럼 살지 않았으면 해요. 어릴 때부터 장애가 특별한 게 아니라 일반적이라는 걸 알고 가면 사회는 분명 조금씩 바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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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의 저자 류승연 작가

이날 류 작가는 활동보조인 제도 덕분에 인터뷰에 나섰다고 했다. 예전에는 등교부터 학교까지 엄마인 당사자가 신경 썼지만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이 제도 덕분에 틈틈이 책도 쓰고 딸과 더욱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소외될 수 밖에 없는 다른 형제와 남편에 대한 배려와 희망을 놓치지 않는 것도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가진 미덕이다. 막연한 분노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누리는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생활경험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치료만 지원되는 게 현실이에요. 일괄적인 급수대로 지원을 받는 건 꼭 개선되야 해요. 뇌병변, 발달장애, 자폐를 포함해 다 발달이 다른데 다들 ‘장애’로만 묶어버리죠. 부모는 아이들마다 각자 특성이 있다는 걸 알아요. 느리지만 천천히 발달하고 있는 내 아이도 여느 아이들과 똑같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혹시 주변에 장애아가 지나간다면 그냥 ‘아이’로 봐주세요. 너무 심한 오지랖은 사양하지만 ‘몇 월 생이에요?’ ‘선천적인건가요? 혹은 후천적?’이라는 질문은 오히려 같은 부모로서 반가워요. 그런 관심이 분명 이 세상을 변화시킬 거라고 확신합니다.”

류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장애인이란 오랫동안(長) 사랑(愛)받는 사람(人)의 준말’이라고. 매일 아이들이 자신의 품 속에서 까무룩 잠드는 순간 그는 또다시 되뇌인다. ‘잘 크고 있어서 고맙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