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예살그살' 출간한 김기수, "남자로서 희열, 화장하면서 더 느껴"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8-02-23 07:00 수정일 2018-02-23 07:00 발행일 2018-02-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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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리스'의 선봉에선 뷰티 크리에이터 김기수
자신의 화장 노하우 낸 책에 여성들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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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남자여서 행복해요.”

본업인 개그맨에서 젠더리스의 선구자이자 뷰티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김기수. 화장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유교사상에서 과감히 벗어나 인생 최고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 2일 출간된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이하 예살그살)는 그가 남자로서 ‘숨어서 화장해온’ 지난 20년 노하우가 가득 담겨있다.

화보집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메이크업 기술을 표방했다면 오산이다. 흔히 ‘똥손’이라고 표현하는 손기술 없는 사람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책 속 필살기는 약 2분간의 에피소드로 만들어져 유튜브 등 동영상 공유사이트에서 소비되던 콘텐츠다. 100만뷰 이상, 누적 재생 수 1억뷰를 훌쩍 넘긴 영상 속 꿀팁들이 책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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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의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SBS 예살그살 제작진 , 김기수 지음 | 김영사 | 1만 4800원(사진제공=김영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재미 없으면 바로 스킵하잖아요. 아침에 면도하고 오후 3시면 거뭇하게 수염이 올라오는 제가 ‘신제품 좀 그만 사’, ‘클렌징은 꼭 해야해’를 외치며 화장법을 알려주니 신기했던 거죠. 3월에는 제 이름을 딴 화장품이 출시돼요. 쿠션,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립스틱. 가성비 갑인 제품들이니 기대해주세요.”

처음 그가 뷰티 유튜버·크리에이터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악플이 쏟아졌다. 인기 개그맨에서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방송계에서 사라진 뒤 성 정체성을 의심하는 대중들의 호기심이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김기수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자동차에 ‘열광하는 척’ 했던 시절도 있었다. 무죄를 받았지만 그 사실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대중들을 보면서 단단해진 멘탈도 결심하는 데 한몫했다. 

“보고 싶은 대로 보시라고 했어요. 내가 ‘게이다 아니다’ 밝히는 것조차 그분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직업 자체가 보여지는 삶이니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매일이 설레이고 좋아요. 솔직히 남자로서 성적인 쾌락보다 메이크업이 잘 됐을 때의 카타르시스를 더 느껴요. 전 뷰티와 결혼했고 그로 인해 자식 같은 이 책과 앞으로 나올 화장품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김기수는 하루의 대부분을 화장품 성분 공부와 피부 관련 의학 지식을 쌓는 데 할애한다. 오는 5월에는 ‘예살그살’의 시즌 2가 방송될 예정이기도 하다. 뷰티 영역을 확장해 고급 기술과 네일, 헤어, 남자를 위한 메이크업, 워킹맘과 주부를 위한 화장법까지 아이템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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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화장러이자 뷰티 크리에이터로 ‘예쁘게 살래? 그냥 살래?’를 출간한 김기수.(사진=추영욱 인턴기자 yywk@viva100.com)

그는 “가끔 ‘나는 왜 이렇게 무식할까’라는 생각도 한다. 프로그램과 책이 인기를 끌면서 PPL이 엄청 들어오지만 그 돈을 포기하면 했지, 내가 직접 써보고 감동받지 않은 것들은 소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유료광고를 포기하고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직접 써보는 시간만 2주 넘게 들이는 정성과 꼼꼼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의 ’뷰티 사랑’은 남다르다. 그렇기에 더더욱 ‘예살그살’에 소개된 아이템들은 K뷰티를 이끌어갈 주인공이기도 하다.  

“화장품 공부를 하니 애국심이 더 생겨요. 기초제품의 경우 우리나라는 37개 실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외국은 17개만 패스해도 되는 거 아셨어요? 제가 코덕(화장품인 코스메틱과 덕후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보니 로드샵을 애용하는데 정말 가성비 최고인 제품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 꼬요(‘꼬마요정’의 준말로 ‘예살그살’을 보는 시청자들을 뜻함)들이야 말로 애국의 일등공신이에요. 브랜드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화장품이 뭔지를 너무 잘 안다니까요.”

김기수는 이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 남자여서 화장한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던 경험을 딛고 사회적으로 건강한 ‘젠더리스(성과 나이의 정의를 구분 짓지 않는 것)’운동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수염을 길러도 건강한 피부톤을 위해 팩트를 바르고 립스틱을 바르는 남성들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선두에 섰다.

“앞으로 더 보여드릴 게 많아요. 자칫 외모지상주의로 비춰질 수 있지만 ‘김기수=화장을 좋아하는 남자’임을 당당해 드러낼래요. 나만의 뷰티 시크릿이요? 물 많이 마시고 귀 밑 마사지를 꾸준히 해줘야 해요. 제가 사실 술은 끊었는데 담배를 못 끊어서 자기 관리는 필수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네요.(웃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