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출규제 또 직장인만 당하나

최재영 기자
입력일 2017-10-19 16:15 수정일 2017-10-19 16:16 발행일 2017-10-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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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금융부 기자

“월급은 몇 년째 그대로입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애들 학원비며 생활비까지 이제 은행 대출을 받지 않고는 살기 어려울 지경이에요. 그런데 정부는 가계부채를 문제 삼아 모든 대출창구를 막아버렸어요. 결국 직장인만 또 당한다는 생각이네요.”

자신을 20년차 직장인 김모씨라고 소개한 한 독자가 기자에게 보낸 메일 일부 내용이다. 김씨는 정부의 대출 규제가 ‘직장인’만 ‘봉’으로 만드는 셈이라며 하소연을 쏟아냈다. 정부의 8·2대책 이후 시중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까지 대출 규제를 시작했고 조만간 발표할 신(新)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결국 직장인 대출 규제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실제 최근 금융당국의 기조와 은행권의 영업을 보면 김씨의 하소연이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정부는 1400조원의 가계부채 급증요인으로 주택담보대출과 함께 신용대출을 지목하고 규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신용대출은 김씨처럼 직장인들에게는 ‘필요 악’으로 꼽히는 대출이다. 생활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목돈을 쓸 수 있어 당장 대출을 조인다면 가계가 입는 타격은 예상보다 더 크다.

이런 상황인데 반해 정부는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취지로 자영업자와 벤처·중소기업대출도 크게 늘리고 있다. 소액대출은 물론 저금리 대출상품도 내놓고 있다. 정부나 은행들의 정책은 김씨처럼 직장인들이 보기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계속 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가계부채 대책의 방향성을 살펴보면 다주택자 대출규제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직장인만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정확한 수요조사 없이 직장인 대출창구를 조인다면 김씨와 같이 “직장인만 당한다”는 불만만 높아질 수 있다.

최재영 금융부 기자 sometimes@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