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홉킨스, 키이라 나이틀리의 영화, 아야세 하루카 드라마로 먼저 만났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7-10-06 10:00 수정일 2017-10-06 14:32 발행일 2017-10-06 99면
인쇄아이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안소니 홉킨스, 엠마 톰슨, 제임스 폭스, 크리스퍼 리브 주연 '남아 있는 나날'
캐리 멀리건, 키이라 나이틀리, 앤드류 가필드 주연 영화, 아야세 하루카, 미우라 하루마, 미즈카와 아사미 주연 TBS 드라마 '나를 보내지마'
page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안소니 홉킨스의 영화 ‘남아 있는 나날’, 앤드류 가필드·키이라 나이틀리의 영화 ‘나를 보내지 마’, 아야세 하루카의 드라마.(사진제공=민음사, 각 배급사)

기타리스트와 가수를 꿈꿨지만 이루지 못해 작가가 됐다고 말하곤 하던 영국의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가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를 “프란츠 카프카와 제인 오스틴을 섞은 것 같은 작가”라고 소개한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5일(현지시간) “감정적으로 충만한 소설을 통해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진 환상 이면의 심연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감정적으로 충만한 삶을 강조하는 그의 작품세계가 잘 표현된 대표작 두편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는 이미 1994년, 2010년, 2014년, 2016년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만들어져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page000

일생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소중한 이들을 챙기지 못하는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충직한 집사와 인간 생명 연장을 위해 장기를 내어주고 서른 전에 죽는 복제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두 작품은 사랑영화의 외피를 둘렀지만 당시 영국 시대상을 담고 있다. 

‘남아 있는 나날’은 가즈오 이시구로 제작, ‘전망좋은 방’ ‘모리스’ ‘하워즈 엔드’ 등의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안소니 홉킨스, 엠마 톰슨, 제임스 폭스, 크리스퍼 리브 주연 영화로 만들어져 1993년 개봉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영국 귀족 달링턴 저택의 집사 스티븐스(안소니 홉킨스)의 이야기다.

맹목적인 직업의식과 충직스러움으로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사랑하는 여인 켄턴(엠마 톰슨)을 두번이나 떠나보냈다.  그가 충직스럽게 지키고자 했던 달링턴경(제임스 폭스)은 전쟁 후 나치주의자로 몰려 폐인이 돼 버리고 만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부터 시작된 영화는 20년이 훌쩍 지난 뒤까지를 아우른다. 전후의 영국, 새로운 주인을 맞은 달링턴성을 본인의 삶에 빗댄 스티븐스의 생각이 의미심장하게도 다가오는 작품이다. 

자신의 일에 실수하지 않으려 절제하고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의 행복과 소중한 이들의 아픔을 방치하는 실수를 저지른, 그래서 꿋꿋이 살아남았지만 남은 날들을 회한으로 보내야할 스티븐스의 이야기는 한편의 서글픈 우화 혹은 말간 수채화처럼 애틋하다. 젊은 시절 휴 그랜트의 깜짝 등장은 덤이다.

page111

‘나를 보내지 마’는 서른 안팎이면 사라질 가혹한 운명의 복제인간들이 그리는 슬프고도 애틋한 SF 로맨스 소설이다. 인간에게 장기기증을 위해 복제된 도너(Donor)들의 헤일셤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도너들이 나누는 우정과 사랑, 이를 확인하려는 안간힘, 인간들의 수명 연장을 위해 서른 전에 죽음을 맞는 아이러니, 이별로 인한 상실감에도 포기 하지 않는 희망과 삶의 가치 등을 다룬 작품이다. 

인간에게 장기를 내어주며 죽어가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 사랑과 신뢰의 가치 등을 놓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인 복제인간의 러브스토리는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마크 로마넥이 영상화했다. 화자(話者)이자 사려깊은 간병인 캐시는 캐리 멀리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루스는 키이라 나이틀리, 감정표현에 서툰 토미는 앤드류 가필드가 연기했다.  

헤일셤 세일 페스티벌에서 토미가 캐시에게 준 카세트테이프에 수록됐던 팝송 중 하나에서 제목을 딴 ‘네버 렛 미 고’ 1978년부터 1990년대까지의 캐시와 그 친구들을 따른다. 진실을 전하던 교사의 실종, 인간의 생명을 위해 장기를 내어준 친구들, 희망이 실종돼 버린 청춘들의 상흔 등은 2017년 대한민국 청년들과 사회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2014년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 영화 ‘심야식당’의 임시직 직원 쿠리야마 미치루를 연기했던 타베 미카코 주연의 연극으로 공연됐고 2016년에는 아야세 하루카, 미우라 하루마, 미즈카와 아사미 주연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사랑받았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