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MB 블랙리스트', 언론인은 부역자였다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17-09-13 14:20 수정일 2017-09-13 14:24 발행일 2017-09-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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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 문화부 기자

‘카더라’는 모두 사실이었다. 소문으로만 흉흉했던 MB정부의 블랙리스트가 공개되던 날, 문화·연예계 인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12일 국가정보원은 이명박(MB) 정부 시절 만든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전체 명단을 공개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설’들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국정원 적폐청산 TF) 조사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실명이 적혀 있는 문건이 발견되면서 알려진 이 블랙리스트에는 총 82명이 올랐다.

대통령에 대한 명예실추, 좌성향 영상물 제작으로 불신감 주입, 촛불시위 참여로 젊은층 선동 등의 이유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층 더 치졸하고 악랄하다. 특정 프로그램 폐지 유도, 김제동·김미화 등 진행자 하차 유도, 정권 사업에 비판적인 방송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비판 자제 협조 등이 세세하게 적혀 있다. 국정에 치중하느라 여념이 없으실 대통령의 지시를 받들어 국정원장이 이를 진두지휘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냈던 세금이 아까울 지경이다. 정부와 국정원의 지시를 받들어 모신 이들은 방송사 간부들이었다. MBC 김재철 사장 시절 MBC 라디오의 한 간부가 당시 청취율 1위를 달리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는 김미화씨에게 “다른 프로그램을 맡아보라”고 회유한 사건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생전 언론 바로잡기에 힘썼던 고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이 이익을 위해 힘을 남용하면 불가사리 같은 존재가 된다”며 “언론은 정치를 견제하고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권력과 결탁한 작금의 한국언론은 ‘불가사리’와 다를 바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보도개입을 인정한 윤세영 SBS 회장이 사임했다. MBC와 KBS도 공영방송 정상화를 촉구하며 경영진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전 정권에서 부역했던 이들이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언론인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기회다.

조은별 문화부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