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도시바 인수 무산되나…"우선협상자 美 WD로 교체"

김지희 기자
입력일 2017-08-24 17:44 수정일 2017-08-24 17:44 발행일 2017-08-24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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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시바 본사 전경. (연합)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유력 후보로 떠올랐던 SK하이닉스의 입지가 위태로운 모습이다. 도시바의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일본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우선협상자가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연합에서 미국 웨스턴디지털(WD)로 교체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반도체 부문 자회사인 도시바메모리의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자로 WD가 주도하는 미일연합을 지목하고 이달 내로 매각협상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도시바가 우선협상자를 교체한 배경으로는 도시바의 경우 채권은행단 압력이, WD는 거액 감손손실 우려가, 채권은행단은 거액 대손충당금 우려가 주요했다는 게 외신의 설명이다.

앞서 지난 6월 도시바는 일본 산업혁신기구와 정책투자은행,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털, SK하이닉스가 속한 한미일연합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털을 제외하고 대신 WD와 또 다른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포함한 새로운 미일연합과 협상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이번 도시바의 ‘변심’은 채권은행단의 최후통첩이 핵심 요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7일 진행된 채권은행단과의 회의에서 도시바는 이달 내로 매각계약을 완료하지 않으면 자금을 댈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 주요 채권은행들이 도시바에 제공한 융자금액은 총 6800억엔(약 7조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도시바 입장에서는 은행단의 외면을 받게 되면 투자여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WD가 도시바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WD의 소송은 한미일연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에도 이번 인수전의 핵심 변수로 꼽혀왔다. 한미일연합과의 교섭은 WD가 소송을 철회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도시바는 WD와 손을 잡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는 분석이다. 매각협상이 합의에 이를 경우 WD 역시 소송을 철회하기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이미 이번주부터 WD는 도시바메모리 사업의 자산실사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중재재판소와 미국 법원에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 WD도 경영 안정을 위해서는 도시바와의 협업을 서둘러 정상화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WD는 도시바와 일본 내 욧카이치공장을 공동 운영하며 도시바에 반도체 공급을 의존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WD가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성공할 것이라 확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WD 진영이 다른 경쟁사에 비해 낮은 1조9000억엔 수준의 인수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도시바가 당초 요구한 2조엔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여기에 국제입찰에서 갑작스럽게 우선협상자를 바꾸는 경우가 이례적인 만큼 시장의 불신이 깊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협상과정이 또 다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WD의 출자 방식 혹은 비율에 따라 도시바메모리의 경영권이 위태로워질 경우 교섭이 결렬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는 “여전히 도시바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지희 기자 je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