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상한 계란값 인하…소비자 신뢰는 뒷전인가

박준호 기자
입력일 2017-08-24 15:44 수정일 2017-08-24 15:55 발행일 2017-08-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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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생활경제부 기자

“오를 땐 거침없더니 내릴 땐 티도 안 난다. 지금 상황에서 돈 버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대형마트가 일제히 계란 가격을 인하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계란 소비가 줄면서 산지가격은 열흘 만에 25%나 폭락했지만 정작 대형마트의 가격 인하폭은 10% 내외에 그쳤기 때문이다.

가격책정은 판매자의 권한이라지만 단순히 따져 봐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공급이 줄자 계란값이 순식간에 2배 수준으로 치솟았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위기에 내몰린 농가들은 도매가격 폭락으로 시름하고 있는데, 오히려 상생을 외치는 유통사들은 국민적 불안감을 이용해 사실상 폭리를 취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형마트들이 보여준 태도도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당초 이마트는 23일 산지 가격 폭락에 따라 6980원에 판매하던 계란 한판 값을 6880원으로 100원 인하한다고 밝혔다. 도매가가 25% 떨어졌는데도 소매가격 인하 폭은 2%가 채 되지 않는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아무리 들먹인다 해도 납득할 수 없는 셈법이다.

이마트는 터무니없는 가격 인하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자 부랴부랴 인하 가격을 500원으로 재조정했다.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하 계획이 없다던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이마트가 총대를 메자 눈치를 보며 급하게 인하행렬에 동참했다. 롯데마트는 계란 한판 가격을 200원 내리겠다고 발표했다가, 비난 여론이 부담됐는지 불과 몇 시간 뒤 600원으로 수정했다.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준호 생활경제부 기자  ju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