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출간한 이회창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일관되게 나가는 게 정치!"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7-08-22 15:29 수정일 2017-08-22 16:13 발행일 2017-08-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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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20년만의 회고록 출간 기자간담회 열려
민감한 정치사안엔 위트와 격려
문재인 정부에는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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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이회창 회고록’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은 박 전 대통령 자신과 옛 새누리당에 있다고 지적했다.(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정치란 누가 코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걸어가는 것.”

세 차례의 대권 도전. 그 중 두 차례는 문턱까지 갔다. 연필을 깎아가며 원고지에 꾹꾹 눌러 쓴 3800매의 원고지.3년간의 집필기간 동안 보수의 단합과 분열을 겪고 촛불집회를 통한 정권교체와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았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82)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자신의 책 ‘이회창 회고록’ 발간 기자간담회에서 위트와 여유로움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소용돌이 치는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흐름에 맞섰던 그는 ‘공정한 보수주의’, ‘따듯한 원칙주의자’로 평가받는 만큼 정치적이고 민감한 질문이 쏟아졌음에도 스스로를 “부족하고 실수가 많았던 사람”이라고 낮추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야당으로서의 역사가 잊혀지는 데 대한 아쉬움으로 이번 회고록의 집필했다고 설명한 그는 “정치시절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심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역사라는 것은 승자에 의해 버려지거나 실종된 기록 아닌가. 다산 정약용은 훌륭한 업적으로 평가되는 위인이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던 인물이에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야당의 잊혀진 기록으로 남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있었죠. 그 역사가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거였다면 좋았겠지만 동료들이 참 많이 고생했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또 쓰겠나 싶었죠.”

이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이번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자는 바로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이라며 “정말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의 가치에 배반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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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회고록'(사진제공=김영사)

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 ‘3김’(金)에 대한 이야기, 3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과정을 비롯해 유년시절의 추억 등이 두권에 나눠 담겼다.

대법관, 중앙선거관리 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겪으며 이른바 엘리트로 살았던 삶을 자랑하기보다는 ‘내 바닥을 드러내는 불안함과 실패한 사람’으로서의 성찰이 문장 곳곳에 드러난다. 

정치계 원로답게 현 정부에 대해선 ‘쓴소리’도 잊지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과 관련해 이 전 총재는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홍보에 치중하는 모습이 걱정스럽다”며 “장기적인 국가정책은 말을 바꾸면 안된다. 최근에는 정부가 장기 국가정책인 원자력발전소 문제에 대해 당장 바꿀 것처럼 말했다가 검토해보겠다고 한다. 이런 부분이 국가 미래에 대해 굉장한 불안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보수 진영이 보여주고 있는 위기에 대해선 ‘혁신’을 강조했다.

“국민들이 왜 보수에 대해 실망했는지를 보는 건 간단해요. 스스로 부정적인 측면을 과감히 털어내고 서로 인간적으로 믿고 신뢰해야만 하죠. 이제 의원수에 연연하고 합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국정치가 건전하게 가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적임자? 그건 (누군지) 말하기 어렵지만 포퓰리즘에 좌우되지 않고 우직스럽게 한 길을 간다면 분명 달라질 거예요. 큰 선거가 다가올수록 왜 보수여야 하는가를 진솔하게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죠.”

스스로를 ‘정치계를 떠나 뉴스로만 접하는 일반인’이라고 말했지만 국방과 외교관계에 대해서는 굳건한 의지를 피력했다. 최근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불안과 한중동맹, 문재인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에 대한 질문에 “김정은과 전쟁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화나 협상을 꺼낼 때가 아니다.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섰고 핵이 아닌 재래식 군비와 전세계 1위 수준의 북한의 화학무기 등 한반도의 위협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동맹은 단순히 친분이 아닌 울타리다. 북한의 핵을 없애기 위해 한미 동맹을 깨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결국 정치라는 것은 스스로가 길을 여는 겁니다. 누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소위 정치공학적으로 지금 당장 표가 된다고 해서 접근한다면 국민들은 절대 그것에 속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일관되게 나가는 게 정치죠. 그것이야 말고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받는 길이에요. 예상 판매부수?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인기작가도 아니고…(웃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