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째 '제자리 걸음' 도시바 인수전…SK하이닉스 불안감 ↑

김지희 기자
입력일 2017-07-30 15:41 수정일 2017-07-30 16:57 발행일 2017-07-3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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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소재 도시바 본사 전경. (연합)

지난달 21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던 도시바 인수전이 한 달 넘게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당초 웨스턴디지털(WD)이 도시바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 결과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소송이 합의로 마무리되면서 매각 지연 상태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30일 니혼게이자이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28일(현지시간) WD가 도시바메모리 매각 중단을 요청하며 낸 가처분 소송의 두 번째 심리를 진행하고 ‘도시바가 매각 완료 2주 전 WD에 통보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양사 합의안을 승인했다. 이날 심리는 WD와 도시바 양측이 지난 14일 열린 심리에서 법원이 제시한 중재안을 받아들이고 법원이 해당 합의안을 수용하면서 5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WD가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 통보를 받게 된 WD가 2주 동안 실제 계약 체결에 제동을 걸기 위한 준비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WD는 성명서를 통해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모든 당사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해결책 모색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반면 도시바는 매각 협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며 10월 이후 시작될 국제중재재판소 심리를 대비한다는 입장이다. 도시바 나루케 야스오 부사장은 “내달 중 구성될 중재재판소에서 도시바의 입장이 인정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2주 전 통지 의무’는 중재재판소 심리 시작 이후 60일 동안 효력을 발휘하는 탓에 종전 매각 계획에는 지장이 없다는 게 도시바의 설명이다. 10월 중 심리가 시작될 경우 1월까지 통보 의무가 존재하며, 도시바는 내년 3월을 매각 완료 목표시점으로 보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미일 컨소시엄에 속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이번 재판부의 결정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법원이 매각 작업을 잠정적으로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나, 향후 도시바와의 협상이 마무리되더라도 사전에 관련 내용을 인지한 WD 측이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부담을 안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 법원에서 ‘WD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로 공이 넘어갔다는 점도 고민이다. 중재재판소는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심리가 1년 반 이상 소요되는 탓에 소송에 따른 리스크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높다. 도시바의 목표대로 내년 3월까지 매각 절차가 완료되더라도 해당 재판 결과에 따라 매각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도시바메모리 매각 작업은 소송전을 제외하더라도 다방면에서 혼전 양상을 띄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 지분을 확보해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한미일 컨소시엄과 도시바 간 협상이 정체된 모습이다. 최근에는 도시바가 한미일 컨소시엄 외에 대만 훙하이그룹, WD와 미국 사모펀드 KKR 연합 등과 재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한편 지난 27일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신들은 도시바 채권단 사이에서 도시바메모리 매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만큼 파산보호 신청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지희 기자 je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