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뷰] 우리는 여전히 그 시절에 있다…연극 ‘1945’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7-07-17 21:23 수정일 2017-07-18 08:52 발행일 2017-07-17 99면
인쇄아이콘
[국립극단]1945_공연사진_01
연극 ‘1945’.(사진제공=국립극단)

“사람이 아냐! 물건이야, 버려진 물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강점기, 개인 대부분은 약자였고 고통받았다. 누군가는 사명감을 가지고 저항하며 ‘불령선인’으로 살았고 또 누군가는 그 일제에 기대 같은 조선인을 핍박하며 삶을 영위했으며 몇몇 무리들은 중국 땅에서 2등 국민으로 정착했다. 버티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결국 개인의 삶은 어느 시대든 생존의 문제고 인간다움과 존엄성의 문제다.

배삼식 작가의 신작 연극 ‘1945’(7월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는 중국 장춘에 정착해 2등 국민으로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하며 버텼는지의 과정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해방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만주 장춘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의 풍경이다.

[국립극단]1945_공연사진_04
연극 ‘1945’.(사진제공=국립극단)

누구 하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지 않는, 국가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각자도생의 분위기 속에서는 제 앞가림만으로도 바빴다.

하지만 어딘가 소속이 되는 순간부터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크고 작은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 단위는 크게는 국가이며 작게는 직장, 학교, 마을 공동체, 일본의 2등 국민이면서 장춘에서 살고 있는 조선인, 사상에 따른 경계 등 무궁무진하며 동시다발적이다.  

연극 ‘1945’ 속 공동체는 하나의 기차표에 묶인 사람들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2등 국민으로 살아남느라 장춘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는 이들, 이명숙(김정민)은 위안소에 있다 간신히 살아서 도망쳤고 오영호(홍아론)는 여동생을 잃었으며 구원창(백익남)은 한글학교에 열심이었다. 

[국립극단]1945_공연사진_05
연극 ‘1945’.(사진제공=국립극단)

아이러니하게도 구원창의 자식들이며 극의 화자인 숙이(주인영)와 철이(유승락)는 일본인 학교에 다니느라 한글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다. 조선인이지만 중국 장춘에 머물며 일본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다양한 공동체의 경계에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장수봉(박윤희)이 ‘마누라’라고 데려온 박선녀(김정은)는 수상하지만 이상한 데 재주가 있어 꽤 유용하다. 하물며 명숙의 여동생으로 위장한 일본인 미즈코(이애린)도 있다.

누구 하나 흠이 없어야 무사히 기차에 오를 수 있는 운명 공동체가 되면서 구성원들은 내적 문제 색출에 눈을 돌린다. 그들은 명숙과 미즈코의 돈을 밑천 삼아 떡을 만들어 팔며 단란한 한때를 보내기도 했고 심지어는 사랑에 가까운 호감을 보내기도 했다.

Untitled-1
연극 ‘1945’.(사진제공=국립극단)
공동체를 위해, 나라를 위해, 공익을 위해, 우리를 위해…이유는 다양하지만 누구 하나 나만을 위해서라고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는 자신의 발목이 잡힐까 강요하는 개인의 희생이다.

명숙에게 미즈코를 버리면 같이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하고 어려움에 처한 동료는 한(寒) 데 방치한다.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받아줬을 겁니까?”라며 제법 논리적인 의견을 펴고 이 여자들이 가지 않으면 자신도 남겠다던 호기로운 영호도, “우리가 왜 저 일본 여자를 데려가야하는지 이유나 들어보자”던 원창도 결국 어쩔 수 없이 혹은 무의식 중에 전하는 위안이 명숙과 미즈코에게는 상처가 된다.

“이해해 주겠다” “우리가 씻어줘야 한다” 등은 누구를 향한 말인가. 그리고 누가 그 말을 하는 이들에게 그 자격을 허락했는가. 누구나에게 질책이 되는 명숙의 일갈에 연극 ‘1945’의 배경은 그 혼란스럽고 극적이던 시절에서 우리가 발 딛고 선 2017년 대한민국으로까지 확장된다.

결국 그나마 좀 인간다운 이들에게도 씻겨줘야 할 더러운 혹은 불쌍한 존재들, 나라를 잃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지옥을 경험했고 살아남은 위안부 명숙과 그런 위안부들을 핍박하며 목숨을 부지했던 선녀만이 공동체에서 걸러 낸 이들에게로 향한다.

[국립극단]1945_공연사진_06
연극 ‘1945’.(사진제공=국립극단)

극은 가장 밑바닥에 있던 여자들이 버려지기 보다는 가장 인간적인 스스로의 선택으로 공동체를 벗어나는 마무리를 택했다. 앞을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바다에 선 명숙과 미즈코, 그들은 눈부신 조명이 아니더라도 빛났을 모습이었다.

이 마지막 장면이 현실인지 환상인지도 모호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피해자이고 버려진 사람들이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픈 역사다. 배삼식 작가는 그 해결되지 않은 아픈 역사를 겪어낸 이들을 측은지심 일변도로 그려내는 데 반기를 들듯 당차게 외치고 울부짖는 인물로 표현했다. 그렇게 무리들 중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하며 자신의 존엄성를 지켜낸 존재 역시 명숙이었다.

그런 그들에 대해 누군가는 왜년이나 전염병자 등 불순한 이들을 걸러내야 한다고 앞장 서 핏대를 올리고 또 누군가는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며 또 다른 이를 설득하느라 애를 쓴다. 또 누군가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서도 발목이 잡힐 건 두려워 애매한 입장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처 입고 또 누군가는 버려진다. 결국 그들은 공동체 테두리에서 문제가 될 만한 이들을 걸러내고는 기차에 오른다.

[국립극단]1945_공연사진_10
연극 ‘1945’.(사진제공=국립극단)

어디나 어느 시대나 사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극 마지막 한국땅에 살면서 온전히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상태로 방황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철이의 대사는 그 시절부터 이어온 아픈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마음이…아직두 장춘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애.”

크고 작게, 동시다발적으로 경계를 그어대는 공동체의 테두리, 흔히 말하는 정체성은 무엇이며 누구에 의해 규정지어지는가. 배삼식 작가 특유의 차진 말맛이 그 아픔과 혼란스러움을 깊게하고 2017년으로 부쩍 다가서게 한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지금의 우리는 어떠냐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다리'뷰+'다'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