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VS 유일호 재정·금리 두고 정면충돌

이나리 기자
입력일 2016-10-09 15:00 수정일 2016-10-09 18:41 발행일 2016-10-0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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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 재정건전성 톱클래스…통화정책 사용 여력은 제한적”
유일호 “국내 금리 여력 있어”… 금리 인하 압박
감정이 섞인 듯한 '직접 화법' 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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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가운데)가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IMF에서 열린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

2016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정책 여력과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단순한 신경전을 넘어 정면충돌 양상을 보였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개최가 임박한 상황에서 유 부총리가 ‘기준 금리 여력’을 언급하며 돌직구를 날리자 이 총재가 “(한국의) 재정 건정성은 톱클래스”라고 강력 맞섰다. 경제부처 수장과 중앙은행 총재가 우회적인 발언이 아닌 감정이 섞인 듯한 ‘직접적인’ 단어를 구사하며 부딪힌 것이다. 이에 정부와 한은 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 유일호 “국내 금리 여력 있다”… 정부·한은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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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현지시간) “국내 금리는 아직 여력이 있다”라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 유 부총리가 알라스테어 윌슨 무디스(Moody‘s) 국가신용등급 글로벌 총괄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제공=기획재정부)

유 부총리는 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가진 외신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확장적으로 통화정책을 펴왔고 거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한다”며 “거꾸로 본다면 국내 금리는 아직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금리 인상이) 1회 정도에 그친다면 한국은 (그 영향을) 통화정책으로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오는 13일 예정된 금통위를 앞두고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한은은 이날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하고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을 수정 발표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유 부총리의 발언은 금통위에 ’훈수’를 넘어 ’압력 행사’로 비춰진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이어 지난 6일 다시 10조원 규모의 정책패키지 카드를 꺼내 든 직후 나온 경제부문 수장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흘리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주열 “통화정책 여력 제한적… 재정정책은 여력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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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8일(현지시간) “한국의 재정 건정성은 세계적으로 톱클래스”라며 “금융안정 리스크를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말했다.(사진제공=기획재정부)

유 부총리가 직격탄을 날리자 이 총재는 강펀치로 맞섰다.

이 총재는 8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내 통화정책은 이미 충분히 완화적이며 “금융안정 리스크를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선진국의 금리보다 국내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에 대해 “선진국이 제로금리까지 간 것은 경기 침체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기준금리와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 총재의 이 같은 입장은 당장 추가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 총재는 지난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1.25%에서 동결한 뒤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가 실효 하한에 근접했다며 “제로금리나 양적 완화를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총재는 오히려 “정부가 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재정 건전성은 세계적으로 톱클래스”라며 아직은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상대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고 봤다.

이 총재의 발언은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은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정부의 재정정책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때문에 정부와 한은간 ‘핑퐁 게임’처럼 보일 수 있다.

경제부처 수장이 기준금리의 여력을, 통화당국의 수장은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로 ‘남의 다리만 매만지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한편 정부와 한은은 지난 6월 기업 구조조정 재원 마련 방안을 놓고 발권력 동원 여부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인 바 있다.

유 부총리와 이 총재는 함께 IMF/WB 연차총회에 참석 중이지만 현지에서 별도로 만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나리 기자 nallee-bab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