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당국, 보이스피싱 잡으려다 금융소비자 잡겠네

김민주 기자
입력일 2016-08-22 16:25 수정일 2016-08-22 16:32 발행일 2016-08-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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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김민주&nbsp;증권부&nbsp;<span style="font-size: 9pt; line-height: 1.5;">기자

“보이스피싱 잡으려다, 아주 고객들까지 잡을 판입니다. ”

얼마 전 입출금 통장 계설을 위해 방문한 은행에서 직원이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금융감독원이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두 팔을 걷어 부친 지 1년이 지났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부터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재직증명서·사업자등록증 등 증빙서류가 있어야만 신규 입출금 통장 계좌 개설을 가능토록 했다.

그러나 1여년이 지난 현재, 곳곳에서 이에 대한 불만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통장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직장이 없는 취업준비생을 비롯해 주부와 노인들에게 은행의 문턱이 더욱 높아졌다. 직장이 있어도, 재직증명서 등 증빙서류를 잊고 온 탓에 헛걸음하는 고객도 부지기수다.

직원들은 매일 고객 항의에 시달리고 있다. 이 직원은 “하루에 스무 명이 넘는 고객들이 헛걸음을 하고 돌아간다”고 토로했다.

금융당국의 강경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내긴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액과 대포통장 적발 건수 등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53%, 39% 줄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객을 가려 받아도 보이스피싱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피해는 줄었지만 신용등급을 올려준다거나 대출에 보증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뜯어낸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36.7%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68.9%로 급증했다.

정부기관 사칭 같은 고전적 수법보다 경제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수법들이 더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포통장 비율에 초점을 맞춘 규제가 아니라 좀더 현실적이고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법이 진화하면 대책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김민주 기자 stella251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