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영란법에 안걸리려면?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6-06-20 15:39 수정일 2016-06-21 16:04 발행일 2016-06-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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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희승 문화부 기자

한 스포츠지 연예부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선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매니저와 기자 사이의 ‘봉투’가 존재하던 시절이다. 

지금은 이제 막 영화에 데뷔하거나 음반을 낸 신인들이 PD 혹은 언론사에 들려 인사를 하지만 여기에 이 모종의 거래가 당연한 듯 이뤄졌다고 한다. 커피나 조각케이크를 들고 오지만 그때는 너무도 당연하게 현금이 오갔다는 소리다. 

기자 꼬꼬마 시절 호기롭게 선배들이 당시 월급보다 봉투의 금액이 더 많았던 걸 이야기할 때는 ‘그게 과연 가능한 소린가’ 어안이 벙벙했다. 당시 나는 소속사에서 사주는 밥도 불편해서 커피를 대신 산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름의 대처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그 봉투를 허투루 쓰지않고 재테크에 성공해 강남 모처에 꽤 큰 주상복합 아파트를 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연예부 데스크의 서랍에는 언제나 한 가득 봉투와 양주  몇병은 있는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호시절(?)의 막차를 탄 마지막 세대는 지금도 봉투는 아니어도 부서회식에 매니지먼트 홍보팀을 불러 계산을 시킨다든지 혹은 안좋은 기사를 빼주는 조건으로 온라인 광고를 하는 식으로 기자 나름의 매출을 달성하곤 한다. 가수와 방송 분야 취재처를 출입할 때는 이런 일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영화로 출입처를 옮기고 나서는 다른 신세계를 접했다. 이른바 ‘프레스 카드’가 제공됐던 것이다. 과거 독재시대의 ‘개목줄’로 불렸던 프레스카드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한달에 20번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게 극장을 가진 배급사들이 제공하는 카드였다. 영화계 3대 배급사들이 멀티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각 영화사의 홍보팀은 매년 초 골머리를 앓는다. 취지는 언론시사회로 영화를 보지 못한 기자들을 배려하는것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본인이 아닌 여러 명이 돌려 쓰거나 담당기자가 아님에도 끝까지 가지고 있으려는 몇몇 꼰대(?)들의 당당한 요구가 비일비재하다. 지금은 매체당 2개로 제한이 되어 있지만 모 방송사와 일간지에서는 출입처가 자주 바뀌는 특성상 그 전전 출입처 기자들까지 카드를 발급해 달라는 통에 10개가 넘는 카드가 발급된 전력이 있을 정도다. 

그 즈음에 들려온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법) 이 프레스카드 시대의 종말을 고했다. 한마디로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에 관계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회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안되는 법이다. 올해 도착한 프레스카드에도 사용기한이 9월로 제한되어 있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9일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김영란법의 경제적 손실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연간 12조원에 가까운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이 기본 골자다. 프레스 카드가 사라진다는 아쉬움도 잠시, 그간 담당자의 노고를 알기에 ‘일이 줄어들어 좋겠다’고 말을 건내자 의미 있는 한마디가 돌아온다. “대체 할 만한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게 또 일”이라고. 평균 9000원짜리 영화티켓도 이런데 기업과 정치로비의 버짓에 맞는 대체체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희승 문화부 차장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