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칼럼] 쿡방 인기 속 아픈 현실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
입력일 2016-04-14 16:25 수정일 2016-04-14 16:25 발행일 2016-04-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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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

최근 TV 예능프로그램의 큰 트렌드는 요리를 소재로 한 ‘쿡방’과 ‘먹방’이다. 쿡방은 ‘쿡(cook)’과 ‘방송’이 결합된 것으로 요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을 일컫는다. 먹방 또한 ‘먹다’와 ‘방송’이 결합해서 나온 말로 연예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쿡방과 먹방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첫째, 사람들은 미각이 아닌 시각과 청각으로 먹는다. TV 속 요리를 하거나 먹는 모습을 보면 자율감각쾌감 반응(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 자극된다.

즉 도마에 야채를 썰거나 지글지글 음식이 끓는 소리와 시각이 극대화되어 실제 음식을 먹는 것 같은 생동감과 쾌락이 더해진다. 쿡방을 보다가 자연스레 배달음식을 시켜본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쿡방의 예상했던 그 맛과 실제 배달된 음식의 맛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맥락에 맞춰 방송국에서는 생동감있고 맛있는 소리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영상에 인위적인 씹는 소리를 입힌 ASMR 촬영기법을 도입하기까지도 한다.

둘째, 소비자의 욕구 불만이다. 인간은 가장 낮은 단계인 생리적 욕구부터,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그리고 가장 높은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 욕구를 가진다. 심리학자 에이브라함 매슬로가 주장한 이 욕구 5단계는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점점 상위 욕구에 관심이 높아지고 그들의 욕구에 의해 동기가 유발된다는 이론이다. 클레이트 앨더퍼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좌절과 퇴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기 불황으로 유통업계가 전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사업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 3사 평균매출은 전년대비 20~30%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43% 급증했다. 편의점이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주 소비자인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15.8%였던 1인 가구 비율은 5년 만에 21.3%로 급증했다.

이처럼 1인 가구의 증가율이 높은 이유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한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에 따르면 하위욕구가 충족돼야 상위욕구로의 진전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오히려 욕구가 퇴행되어 가고 있다. 즉 앨더퍼가 주장한 것처럼 경제적 어려움과 취업난, 정치적 불만과 국가적 불안이 더해지면서 욕구좌절이 일어나 상위단계의 욕구진전은 고사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욕구도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이처럼 가장 낮은 생리적 욕구부터 충족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니 소비자의 지갑은 닫히고 편의점 같은 작은 소비를 통해 그나마 음식의 즐거움을 해소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쿡방이 인기 있는 이유는 ‘대리만족’이다. 직접 먹지 않더라도 보기만 해도 즐거운 대리충족이 소비자의 욕구를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유는 외로움이다. 한 가족실태조사에서 ‘가족간 대화가 전혀 없다’는 비율이 30.9%로 나타났다. 문제는 갈수록 이 수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처럼 네티즌들의 실시간 댓글에 따라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면서 자신의 댓글을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이겨가는 것이다. 슬프고도 아픈 현실이다.

정인호 VC경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