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주민번호는 초강력 CCTV와 다르지 않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6-04-11 14:09 수정일 2016-04-11 14:09 발행일 2016-04-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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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ONG Moon)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의 주민번호 활용도는 매우 광범위하다. 생활하는 구석구석에 그 번호가 개입하지 않는 영역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넓다.

영국대학 교수 생활을 위해 입국비자를 받고 입국후 규정대로 ‘신상 주거 허가증’을 우체국에 가서 발급받았다. 발급장소가 주민센터나 동회나 구청이 아닌 이유는 영국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상이란 말이 들어간 이유는 증에 내장된 칩에 손가락 10개 지문과 홍채 정보 같은 특징이 저장된 탓이다. 성명, 생년월일, 주소도 기록된다. 허가증이란 의미는 그 신분증 없이는 외국인으로서 영국 국경 내에 거주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희한한 일은 내국인은 신분 확인용으로 오직 여권만 사용할 뿐이다. 여권이 전부이며 우리나라에 해당하는 주민증은 없다. 외국인용 허가증은 전자주민증인 탓에 한국 주민증보다 더 다양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일은 온갖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 1년이 지나도록 이 신분증을 보자는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는 점이다.

부동산 계약시, 은행계좌 개설시에도 신분증은 사용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증을 보자고 요구한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어딜 가도 오직 성명과 주소, 단 두 데이터만 요구할 뿐이었다. 

우리보다 발달된 신용사회라서 그런가 잠시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 전자신분증은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경찰전용이지 일상생활 속에서는 개념철학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전세계에서 현재 주민번호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많으나 우리처럼 광범위하게 쓰는 나라가 또 있다면 중국뿐이다. 

나머지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선진국과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에서도 주민증은 영국처럼 일상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소를 입증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택으로 수신된 우편물의 겉봉투를 지참하고 다니는 것이 생활의 상식이요 지혜다.

그러면 왜 주민증 같은 것을 무용지물화하며 오직 성명과 주소에만 의지하는 것일까.

우리의 사고방식과는 현저하게 다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는 최초의 순간을 상기해봐야 한다. 출생과 더불어 성명이라는 데이터가 부여된다. 부모 성명까지 데이터로서 자연 기록된다. 동명이인 가능성을 배제하려면 주소라는 데이터가 필수불가결하게 기록된다. 

결국 성명과 주소, 이 둘만 가지면 개인식별에 충분한 것이다. 추가데이터 없이도 정확히 짚어내는 작업이 가능하다. 

성명과 주소라는 ‘인위적’ 가공을 거치지 않은 데이터 단 두 개만 가지면 식별 목적 달성에는 완벽하다. 거기다 만약 주민번호 같은 제3의 데이터를 식별목적으로 더 갖다 붙인다면 무슨 의미를 지닐까. 이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무의미’다. 쓸데없는 과잉행위라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식별 방법에 있어서 지난 40여년간 과도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과격’한 정책을 시행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구나 주민번호가 개인정보 데이터에 관한 한 최상위 포식자로서 데이터 선후행 관계를 파악하는 데 마스터 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유념한다면 그 어떤 CCTV보다도 추적 기능면에서 강력하다고 볼 수 있겠다. 

군번과 전혀 다르지 않은 현행 주민번호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