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취방, 수저계급론이 시작되는 곳

권성중 기자
입력일 2016-03-27 10:27 수정일 2016-03-27 10:39 발행일 2016-03-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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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중 부동산부 기자

“안암역 주변 하숙집은 월세 80만원에도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많아요. 여학생 부모들이 선호하죠.”

기자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문 건너편 원룸에 살고 있다. 보증금 300만원, 월세 45만원 짜리 원룸에 룸메이트와 함께 살며 매달 월세 22만5000원씩을 나눠낸다. 이 원룸 건물은 1984년에 지어졌다. 1988년생인 기자보다 4살이나 ‘형님’이다.

고려대 인근에서 가장 좋은 입지를 자랑하는 원룸촌은 ‘정대(정경관) 후문’ 일대. 지하철 6호선 안암역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이 주변은 지하철역, 중심상권이 가깝고 등굣길도 수월한데다 신축 원룸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학생들의 ‘로망’이다. 2~3년 전만 해도 가장 비싼 하숙비는 월세 60만원선이었다. 짧은 기간에 20만원이나 올랐지만 여전히 수요가 높다.

기자가 살고 있는 정문 앞 원룸촌은 가장 인기가 떨어진다. 노후한 건물, 오래된 식당이 주를 이루고 있는 재개발 예정 지역인 탓이다. 길 건너편이 고려대인데도 성북구가 아닌 동대문구에 속한다. 그래서 싸다.

기자의 경제 사정을 수저 계급표에 굳이 빗대자면 금·은·동수저 다음인 ‘놋수저’ 정도가 되겠다. 맞벌이 부모를 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 수준이다. 일정한 수입이 있음에도 놋수저가 월세 80만원짜리 하숙집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캥거루 청년’이 급증하는 사회 분위기를 뒷받침 하는 통계가 쏟아지고 있다. 부모의 든든한 능력을 등에 업고 사회로 나설 준비를 하는 학생들. 비집고 들어갈 작은 주머니조차 없는 학생들. 오늘도 이 작은 대학가에 서로 다른 ‘주머니와 수저’가 보인다.

권성중 부동산부 기자 goodmatter@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