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려가 현실로…기업은행, ISA 불완전판매 논란, "꺾기 의혹"

이나리 기자
입력일 2016-03-15 10:53 수정일 2016-03-15 18:00 발행일 2016-03-1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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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도 적으라고?”…불완전판매·금융실명제법 위반 지적
ISA 판매 개시일 전부터 가입계약서 받아
상품설명도 없이 서명 유도…보안 미흡한 계약서에 비밀번호 기재
소비자 피해 우려, 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제재 절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고객 유치를 위한 금융권의 초호화 경품 마케팅에 이어 우려했던 불완전판매가 현실로 드러났다.

주거래 은행을 둔 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ISA 판매 개시일 전부터 ISA가입계약서를 배포하고, 상품설명 및 설명서도 없이 가입란에 서명을 유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계좌 비밀번호 4자리까지 보안이 미흡한 계약서류에 적도록 하는 등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로 소비자들의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이 같은 영업 행태는 명백한 불완전판매 및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주거래 기업을 상대로 비정상적인 ISA계좌(신탁형) 가입을 종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A씨(34)는 지난 11일 회사 관계자로부터 기업은행 ISA가입계약서를 받았다. 관계자는 계약서에 형광펜으로 표시된 곳에 서명을 유도했고, 신분증을 복사해 당장 다음날까지 달라고 요구했다. 평소 투자에 관심이 있었던 A씨는 유심히 가입서를 살펴봤다. 서류에는 △계좌 개설에 동의한다는 내용 △‘본인이 제공한 정보는 틀림없으며 투자성향에 대해 충분히 설명 듣고 이해했습니다’라는 설명 및 서명 △‘투자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투자 손익에 대한 책임은 모두 고객에게 귀속됩니다’라며 확인과 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A씨는 기업은행으로부터 상품설명서를 받지도,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특히 보안이 중요한 계좌 비밀번호를 버젓이 계약서류에 적게 했다.

A씨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계약서를 나눠주고, 무작정 가입을 유도하면서도 은행 담당직원의 설명은 전혀 없었다”며 “보안이 중요한 계좌 비밀번호 4자리까지 계약서에 기재하도록 돼 있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A씨는 이어 “보통 은행에서 일반회사로 법인영업을 나오면 은행직원들이 판매하는 상품 설명을 한 후 직원들에게 가입을 유도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건 상식에 어긋나는 영업방식 아니냐”며 “직원들의 월급통장 등 주거래 은행이 기업은행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은행에서 회사 측에 ‘꺾기’를 유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ISA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투자상품을 포함하고 있어 정확한 상품내용 인지 및 투자성향 확인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고객 유치에 혈안이 된 기업은행이 ISA 판매 개시일 전부터 ‘사전가입 동의서’가 아닌 ‘가입계약서’를 받는 등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인 영업행태를 벌인 셈이다.

다수 직원들의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가 담긴 무더기 가입서류를 은행직원도 아닌 일반 회사 관계자가 담당하는 것은 허술한 본인확인 절차로 인한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될 것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히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ISA 유치 경쟁으로 인한 불완전판매는 절대 있어선 안 된다”며 “적발될 경우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정 조치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금융당국의 ISA 불완전판매 우려 및 현장점검 강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업현장에서는 보란 듯이 불법적인 영업이 벌어지고 있어 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제재가 절실한 시점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같은 영업 행태에 대해 “ISA가입 영업시 고객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한 다음 가입 신청을 받도록 직원들에게 교육하고 있다”며 “판매 초기다 보니 미흡한 점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직원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은행권에서는 기업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암암리에 이런 형태의 영업이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ISA 판매 개시일 전부터 은행들은 주거래 기업 직원들을 상대로 가입 계약서를 돌리는 등 불완전판매를 일삼는 사례가 더러 있었다”며 “제대로 된 설명 없이 투자위험이 있는 ISA계좌에 가입한 고객들의 피해 등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행위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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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은 보안이 중요한 비밀번호를 ISA 가입계약서에 버젓이 기재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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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은 ISA판매 개시일 전부터 이같은 계약서를 고객에게 나눠주며 가입을 유도했다. 특히 상품설명 없이 투자 손실 등의 모든 책임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내용이 담긴 서류에 서명을 요구했다.

이나리 기자 nallee-bab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