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시 생각한다 "오직 인간만이 지닌 힘"

이채훈 기자
입력일 2016-03-14 14:31 수정일 2016-03-14 14:34 발행일 2016-03-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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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이채훈 금융부 기자

“바둑계의 위기다.”

바둑 아마 5단이자 판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B씨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1국을 본 뒤 깊은 한숨을 쉬며 내뱉은 말이다.

어릴 때부터 바둑을 배워온 그는 대국과 관련된 추억이 많다. B씨는 ‘친교’의 수단으로 바둑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 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간담회 참석차 모인 기자들은 점심시간 알파고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시황 기사나 스포츠 경기 보도처럼 패턴이 있는 기사는 로봇들도 잘 쓴다던데…….”

2020년쯤 국내에서 종이신문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누군가의 예견을 언급하며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결론으로 담소가 씁쓸하게 끝났다.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모 은행에서 최근 내놓은 자동화기기는 영업점 창구 업무의 90% 이상을 소화한다. 금융소비자의 편의성이 높아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은행원들은 그만큼 할 일이 없어진다. 실적이니 성과니 하면서 영업 전선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만능통장이라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고객 유치를 두고 금융업권간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원의 고민거리는 하나 더 늘었다. 은행원인 친척을 설에 만난 C씨는 ISA 출시를 앞두고 친척이 느끼는 실적 압박이 더 세졌다고 말했다.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도 영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세기의 대결 4국, B씨는 ‘느낌’으로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측했다. 친교, 인맥, 느낌 등의 의미를 알파고가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오직 인간만이 지닌 힘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여기에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채훈 금융부 기자 freei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