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내 곳간 왜 비어가나"

이채훈 기자
입력일 2016-02-10 14:00 수정일 2016-02-10 14:00 발행일 2016-02-1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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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만나본 경부선 금융 민심
중산층 A씨 \"대출 심사 강화로 수익형 부동산 투자 포기\"
택시기사 B씨 \"금융권에서 하는 말은 반대로 하면 돼\"
사회초년생 \"청년 금융 습관 바로 잡아주는 정책 필요\"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설 연휴는 정치 민심을 읽는 절호의 기회였다.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요약되는 원숭이의 해, 서민들의 금융 민심을 직접 들어봤다.

최근 노후 생활대책 마련을 위해 지방 중소도시의 수익형 부동산 투자를 고민하던 A씨(부산 거주)는 지난해말 정부의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마음을 접었다.

저성장 시대 진입으로 부동산 전망도 불투명한데다 주택담보대출 심사마저 강화됐기 때문이다. 아파트 한 채와 금융자산으로 노후를 버텨야 하는 A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그저 있는 자산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라고 말했다.

A씨는 최근의 대출 금리 상승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몇 해 전 은행에서 우대조건을 이것저것 끌어 모아 겨우 맞춘 대출 금리가 3% 중반대였다”며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가 마치 최근의 이슈처럼 다뤄지는 건 불만”이라고 말했다.

여신 가이드라인 발표 전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결정 전에도 은행에서 대출 받기는 여전히 힘들었다는 것이다. A씨는 주거래은행에서 자산가에 준하는 우수고객임에도 사정이 이랬다.

7일 대구에서 만난 택시기사 B씨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대뜸 상기된 표정으로 “지금 ‘탑승한 곳’이 어딘지 아느냐”고 목소리를 높인 그는 핸들을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B씨는 최근 들어 대구 C지역에서 잇따라 착수되고 있는 제2금융권 D기관의 영업점 리모델링에 대해 지적했다. 알려진 바로는 영업점 한 곳당 리모델링 비용이 20억원 가까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D기관 영업점이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닌데 리모델링 비용이 왜 그렇지 많이 드는지 모르겠다”며 자산을 맡긴 고객에 대한 배려를 당부했다.

B씨는 금융당국이나 금융기관에서 하는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다”며 달콤한 정책이나 상품을 내놔도 반대로 행동한다고 말했다.

‘탑승한 곳’의 비밀도 털어놨다. 그곳은 옛 대동은행 사옥이었다. B씨는 지난 1989년 문을 열어 1998년 퇴출된 대구 대동은행에 1000만원을 출자했다. 출자금은 금융권 구조조정과 함께 허공에 사라졌다. 대구·경북지역에는 대동은행 퇴출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며 몸져 누운 사람도 있다고 B씨는 전했다.

대동은행 사옥은 현재 금융감독원 등이 입주한 오피스 빌딩으로 쓰이고 있으나 조만간 리모델링 작업에 착수해 ‘DFC호텔’로 거듭날 예정이다.

9일 서울 영등포로 가는 무궁화호안에서 만난 사회초년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줄어드는 것은 통장 잔고요 느는 것은 한숨뿐”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영남지역에서 건축일을 하고 있는 E씨는 최근 마이너스 통장의 유혹을 견뎌내고 신용카드의 한도를 줄였다. 새해 들어서는 체크카드만 쓰고 있다.

그는 “돈 모으는 일은 까다로운데 돈 쓰는 건 무제한으로 풀면 어떡하냐”며 “청년들의 금융 습관을 바로잡아주는 금융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도 핀테크와 함께 금융개혁이 화두다. 그러나 서민이 체감하는 금융은 ‘돈이 도는 활기찬 경제’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3분기 통화유통 속도는 역대 최저 수준인 0.71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채훈 기자 freei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