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파괴적 사랑, 공감적 사랑

한상우 순천향의대 정신과 교수
입력일 2016-01-27 17:15 수정일 2016-01-27 17:16 발행일 2016-01-28 23면
인쇄아이콘
한상우교수
한상우 순천향의대 정신과 교수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세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공감하는 현상에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드라마 속 장면 중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대사를 발견하고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부분이 바로 사랑에 대한 감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2화에서 선우의 어머니가 목욕탕 청소 일을 하는 것을 선우가 알게 된 후 보라에게 자신의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해내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드라마 작가는 보라의 목소리를 빌려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주고 싶은 넉넉함이 아니라 꼭 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야.”

엄마가 아들 선우에게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서 전하고 싶은 절실한 사랑을 선우가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연민의 감정에 빠져있는 것을 나무라는 보라의 말이다. 이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내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을 공감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성동일이 차가운 손으로 아들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며 자신의 차가운 손을 아랫목에 넣고 따뜻하게 데운 후 노을이의 볼을 쓰다듬는 장면에서 보라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단지 그 사람의 체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체온을 닮아 간다는 거야” 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고 싶은 내 욕망이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하고 파괴적인 사랑이지 공감적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끝없이 괴롭게 만든다 해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져도 결국 그 사람을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야.” 자신이 사랑하는 덕선을 동시에 사랑하는 택을 보면서 정환이 가슴 아파하는 장면의 대사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서 사랑이 미움에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시기심, 질투심 그리고 피해불안이 존재하고 있어 사랑이 패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음 근육을 키워야 한다. 사랑이 미움에 패배하지 않도록 말이다.

여기서 마음 근육은 ‘공감능력’이다. 그러나 타인을 공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을 공감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잘 공감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마음을 공감하는 방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남을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내 마음을 공감해 주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없다.

내 마음을 공감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있다. 책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안아주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그래 그럴 수 있어’ 하며 다독여 주는 것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욕망을 대하는 방식이 판단과 평가, 그리고 비판이 아니라 어떤 것도 수용하는 모성으로 자신을 안아주는 것이다. 올 겨울 ‘응답하라 1988’을 본 우리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안아주는 기회를 가져보길 기대해 본다.

한상우 순천향의대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