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2배는 기본, 갑자기 “나가라” 요구

박선옥 기자
입력일 2015-11-23 17:35 수정일 2015-11-23 20:48 발행일 2015-11-2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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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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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신촌, 성수동 등 구도심권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한 것은 “조물주보다 더 무서운 이가 건물주”라는 말이 나올 만큼, 건물주의 횡포가 심해져서다. 임대료를 배로 올리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통보만 남긴 채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적잖다. 

상권이 활성화해 고객 등 유동인구가 몰리면서 임대료가 급등하고, 구도심권의 원주민이나 상권을 일으킨 자영업자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며 다시 생계위협을 받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홍대 S치킨이 대표적이다. ㄱ씨는 지난 2007년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 S치킨을 개업했다. 근저당이 많이 잡힌 건물이라 입주를 꺼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가게를 열었다. 개업비용으로 권리금과 인테리어비용 등을 포함해 2억원이나 들어갔다. 

초반에는 장사가 잘 안됐지만 주변에 경전철역이 들어오고 홍대상권이 확장되면서 2년여 만에 가게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계약기간이 7개월쯤 남은 2013년 12월 건물주는 ㄱ에게 보증금과 월임대료를 2억5000만원에 495만원에서 5억5000만원에 65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ㄱ씨가 건물주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자 이후 명도소송이 제기됐고 급기야 지난 17일 폭력적인 강제 명도집행이 이뤄졌다. 

인근에서 C닭갈비집을 운영 중인 ㄴ씨도 영업을 접어야 할 처지다. 보증금 4500만원에 월세 280만원을 내고 영업을 하던 차에 건물주가 계약만료를 이유로 1억원에 500만원으로 임대료를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중개업소에서는 시세를 감안할 때 이 건물의 임대료를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00만~350만원으로 보고 있다. 

피해 사례를 접수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측은 “C닭갈비집 주인이 열심히 일해 만들어놓은 권리금을 건물주가 권리금과 월세로 받으려는 무권리화 작업”이라라고 지적했다. 

종로 서촌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는 ㄷ씨도 비슷한 경우다. 내년 2월 1일 계약만료를 앞두고 건물주가 50만원이던 월세를 100만원으로 올려달라더니, 말도 없이 250만원에 새로운 임차인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ㄱ씨는 철저히 배제됐다. 월세 인상에 이어, 명도 요구까지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보만 있었을 뿐이다.

경리단길 스트리트 츄러스
경리단길 (사진제공 = 스트리트 츄러스)

2007년 11월 종로구 삼청동에서 옷가게를 시작한 ㄹ씨는 기존에 영업을 하지 않았던 상가임에도 건물주가 권리금 2000만원을 요구해 지급했다. 건물주는 ㄹ씨에게 빨리 나갈 생각 말고 10년 이상 오래 장사하라는 말까지 하고는 2년마다 권리금과 월임대료를 올렸다. 이후 삼청동 상권이 뜨자 임대차 보호기간 5년이 만료를 이유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권구백 전국상가세입자연대 대표는 “박 시장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한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임대료가 올라 감당하지 못하고 세입자들이 떠나는 정확한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산보증금 4억원 이하는 월세 상한선이 9%가 있지만 4억원을 넘을 경우 상한선이 없고, 5년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도 제한이 없다”며 “장기적으로 상가법을 고쳐야겠지만 당장 힘들다면 시가 임대료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했다.  

박선옥 기자 pso982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