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조짐’ 정의윤, 4년 전 박병호와 평행이론?

브릿지스포츠팀 기자
입력일 2015-08-01 15:25 수정일 2015-08-01 15:25 발행일 1970-01-0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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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SK 와이번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SK 정의윤이 8회초 2사 1,2루에서 1타점을 올리는 우익수 앞 1루타를 때린 뒤 백재호 주루코치의 축하를 받고 있다.(연합)
LG 트윈스는 2000년대 초중반 세대교체를 단행하기 위해 파격적인 신인 선발 기준을 내세웠다. 바로 거포 유망주의 수집이었다.
 
드넓은 잠실 구장을 홈으로 쓰는 LG의 사정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역발상에 가깝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LG는 ‘한 지붕 두 가족’ 두산과 마찬가지로 투수 유망주에 아낌없는 투자를 행해온 전례가 있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선이 상당했다.
 
그렇게 고교 야구 무대에서 타격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새싹들이 LG 유니폼을 입었다. 2003년 박경수(1차 지명), 이성열(2차 1순위), 이대형(2차 2순위)을 포함해 2005년 박병호(1차 지명), 정의윤(2차 1순위)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였다.
 
이들 모두 지금은 1군 무대에 자리 잡아 주전급으로 분류되는 이들이지만 이대형을 제외하면 LG에서 제대로 꽃을 피운 선수가 없다. 그나마 성공한 이대형 역시 빼어난 스피드로 승부를 보는 선수였기 때문에 LG의 거포 유망주 육성 정책은 아쉽게 접어야 했다.
 
LG를 떠나 빛을 본 선수들 중 가장 속 쓰린 이는 당연히 박병호다. 넥센 유니폼을 입은 뒤 4번 타자 자리를 꿰찬 박병호는 2년 연속 MVP를 비롯해 올 시즌 4년 연속 홈런왕에 도전 중이다. 심지어 박병호는 올 시즌 후 메이저리그 도전을 타진 중에 있어 소위 ‘탈LG 효과’의 최대 수혜자로 거론되고 있다.
 
LG가 정의윤에게 걸었던 기대도 같은 해 지명했던 박병호 못지않았다.
 
정의윤은 박병호와 똑같이 2005년 입단해 10년 동안 꾸준한 기회를 제공받았지만 끝내 잠재력을 폭발시키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정의윤은 우타 거포를 필요로 하던 SK의 부름을 받아 3:3 트레이드 명단에 포함돼 잠실 구장을 떠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2005년 나란히 입단했던 박병호와 정의윤이 LG를 떠난 뒤의 행보다. 넥센에 안착한 박병호는 이적 후 4경기 만에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이후 타격 영점조준에 성공한 박병호는 후반기에만 1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새로운 거포의 탄생을 알렸다. 트레이드 직전 LG에서 단 1홈런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 박병호는 홈런왕 포함, 시즌 MVP에 오르며 제2의 야구 인생을 꽃 피웠다.
 
공교롭게도 정의윤 역시 SK 이적 후 4경기 째에 아치를 그렸다는 점이다. 전날까지 매 경기 안타를 뽑아내며 타격감을 조율하던 정의윤은 7월 30일 KIA전에서 베테랑 김병현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큼지막한 쓰리런 아치를 그렸다. LG가 그토록 바라던 모습이 SK 유니폼을 입자마자 연출된 셈이다.
 
정의윤은 프로 입단 후 지난해까지 9년간 31개의 홈런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동기생인 박병호 역시 7년간 25홈런에 그친 뒤 이적 수순을 밟았다. LG에서 뽑아낸 연평균 홈런 개수는 3개 언저리로 이마저도 똑 닮은 모습이다.
 
그리고 박병호는 타자 친화구장인 넥센의 목동 구장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고, 정의윤도 투수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대표적인 구장(문학)에 입성했다.
 
1일 ‘친정’ LG와 맞대결에서 정의윤은 김용희 감독의 믿음과는 달리 득점권 찬스에서 고개를 숙여 아쉬움을 주긴 했지만 트레이드 이후 성적은 괜찮다. 소극적이었던 스윙폼을 버리고 자신감 있는 팔로우 스윙으로 변모한 정의윤이 ‘탈LG 효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브릿지스포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