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회장의 '비상장원칙'이 화를 불렀다

김보라 기자
입력일 2015-07-30 17:57 수정일 2015-07-30 17:57 발행일 2015-07-3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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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일가의 경영권 다툼을 지켜보면서 전문가들은 롯데그룹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신격호 회장의 ‘비상장주의’가 일본롯데의 지분 구조를 불투명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결국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권 구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그룹 전체 경영권을 좌우할 신격호·동주·동빈 부자의 광윤사 - 일본롯데홀딩스 지분 구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신 회장의 광윤사 지분이 이미 두 아들에게 상당 부분 증여돼 지분구도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신동주 전 일본롯데 회장이 여전히 “아버지가 최대지분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신격호 회장의 ‘불간섭, 비상장’ 경영 원칙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는 상장 계열사가 8곳이지만 일본 롯데 계열사 가운데는 상장사가 없다. 한국의 롯데쇼핑 상장도 신동빈 회장이 주도했다. 여타 상장 계열사들은 이미 상장된 상태에서 M&A로 계열사 편입이 이뤄진 경우가 많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상장을 꺼리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경영할 수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최근 엘리엇 사태처럼, 주주이익 극대화를 명분으로 이래라 저래라 경영 간섭 받는 게 싫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기업인은 회사가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덕분에 롯데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안정적, 보수적 경영을 펼쳐 올 수 있었다.

롯데그룹의 사내 유보율은 4773.6%로 대기업 중 최고다. 사내유보금도 지난해 말 기준으로 7개 상장 계열사 합이 28조원에 육박한다. 반면 부채비율은 60% 수준에 불과하다. 많이 올랐을 때도 90%를 넘지 않았다. 은행 간섭 조차 받지 않는 ‘나만의 경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신격호 회장의 필생의 경영철학은 ‘거화취실(去華就實)’이다. 겉의 화려함은 버리고 내실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필연적으로 보수적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이런 경영관이 이번에는 ‘비밀주의’로 윤색되어 롯데의 미래에 족쇄가 되고 있다.

김보라 기자 bora669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