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 타계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5-03-23 12:55 수정일 2015-03-23 19:09 발행일 2015-03-24 23면
인쇄아이콘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리 전 총리는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최강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켰다.

세계 금융 및 물류의 허브로 만들었고 부정부패가 드문 깨끗한 사회를 만들었다.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드문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현재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로 성장한 싱가포르. 그 중심에는 바로 리 전 총리가 있었다. 

2015032401020010072
지난 2013년 3월 리콴유전 총리가 한 포럼에 참석한 모습.(AP=연합)

■ 리콴유 주요 연보

1923년 싱가포르 내 화교 가정 출생  》1949년 英 케임브리지대 법학과 입학 》1947년 대학 동문 콰걱추 여사와 결혼 》1950년 英 변호사 시험 합격 》1954년 인민행동당(PAP) 창당 》1955년  PAP 사무총장 오름 》1955년 국회의원 첫 당선 》1959년 英식민지하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 취임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에 싱가포르 병합 》1965년 싱가포르 분리  》1975년 창이국제공항 건설 승인 》1990년 총리직 퇴임 》1990~2004년 선임장관·내각 자문 역할 》2004년 장남 리센룽 총리 취임…리콴유 '멘토장관' 역할 지속 》2015년 3월 23일 91세 일기로 타계.

◇ 리콴유 전 총리의 업적

리 전 총리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했다.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로 지냈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 자리를 지켰다.

리 전 총리가 독립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던 1965년 싱가포르는 부존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했다.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구입할 정도로 경제 상황도 열악했다.

그러나 리 전 총리의 손끝에서 싱가포르의 ‘흑 역사’가 바뀌기 시작했다.

리 전 총리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다.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만 봐도 재임 기간의 업적을 알 수 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총리직에서 리 전 총리가 퇴직한 1990년에 1만 2750달러를 달성했다.

리 전 총리가 탄탄하게 세워둔 기반은 현재와 미래의 싱가포르를 말해주고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 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를 기록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 결과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결과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를 기록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별세한 22일(현지시간) 그가 입원해 있던 싱가포르의 병원 앞에 애도의 메시지와 꽃들이 쌓여 있다.(AP=연합)

◇‘아시아의 히틀러?’ 리콴유 전 총리의 리더쉽에 대한 논란

리 전 총리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이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싱가포르에 정치,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안겨줬지만 이면에는 국민들에게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을 적용하고 있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한때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49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때문에 리 전 총리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을 동원하거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을 초래하진 않았다.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을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부정부패의 악순환 고리를 사전에 차단했다.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유도하고 공무원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보수를 지급했다. 

리 전 총리를 지지하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독재적 방식이 국가통치를 효율화하는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리 전 총리는 독재적이라는 외신들의 비난에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우며 반박했다.

서구에 비해 개발이 한참 뒤진 아시아가 유럽이나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점이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 등은 아시아적 가치에 동조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독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란도 동시에 일으켰다.

1997년 이후 ‘아시아적 가치’는 사장됐다.

외환위기와 함께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자 더 이상 아시아적 가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1979년 10월 19일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08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리 전 총리를 접견하는 모습.(사진=e영상역사관·연합)
◇ 리콴유 전 총리 타계에 대한 각 국가 정상들의 반응

리 전 총리가 이날 타계하자 각 국가 정상들의 애도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성명을 통해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며 “아들 리셴룽 총리가 매우 슬퍼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폐렴으로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리 전 총리의 타계에 깊은 애도를 전하고 그의 가족, 싱가포르 국민과 정부에 위로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싱가포르가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는다”며 “싱가포르의 국부인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 놀라운 인물을 잃은 싱가포르 국민의 애도를 함께 한다”며 “그는 역사의 진정한 거인, 현대 싱가포르의 아버지, 아시아의 위대한 전략가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성명을 통해 리 전 총리가 50년 전 가장 취약했던 국가를 독립으로 이끈 “우리 지역의 거인”이었다며 “그의 지도력 때문에 싱가포르는 세계의 가장 번영된 국가, 금융 강국, 기업하기에 가장 쉬운 나라 중 하나가 됐다”고 평가했다.

존 키 뉴질랜드 총리도 “그는 직관과 선견지명으로 유명했다”며 “그러나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싱가포르를 성공시키기 위해 흔들리지 않았던 결의였다”고 밝혔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