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치닫는 美·러…다시 커지는 핵 위협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5-01-26 15:46 수정일 2015-01-26 17:49 발행일 2015-01-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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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 '핵 안보 협력 체제'로 불똥
푸틴 국제면 톱사진

신 데탕트의 종말이 오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두 수퍼 파워가 또 다시 맞붙으면서 양국 관계가 냉전 종식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교전 사태를 둘러싼 문제는 양국의 핵 안보 협력 체제 문제로까지 번졌고 과거처럼 전 세계에 극도의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현지시간) 핵 안보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 핵물질 감축을 지원하는 예산의 책정을 거부했고 러시아는 핵 안보 협력을 끝내겠다는 뜻을 미국 관리들에게 통보했던 것이 이러한 상황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지난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국제안보협력을 위해 핵감축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 재고와 핵물질을 가졌던 두 국가가 적극 합의를 이뤄내면서 냉전 당시 국제사회에 팽배했던 핵위협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양국의 협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1992년 샘 넌(민주·조지아), 리처드 루거(공화·애리조나)가 지난 1992년 초당적으로 입안한 이른바 ‘넌-루거’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구소련의 핵무기와 핵 물질 등을 폐기하는 대가로 핵 시설과 기술을 민간 산업용으로 전환하고 핵 과학자들의 재교육과 재취업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냉전 직후 7600개에 달하던 핵탄두가 불용화됐고 4100톤의 화학무기가 제거됐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러시아와의 핵안보 협력은 더욱 강해지는 듯했다. 그는 취임 당시 ‘핵없는 세상’ 구호를 외치면서 지난 2010년에는 처음으로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 교전 사태를 둘러싸고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반군의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겠다”고 말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적 대치를 제외한 모든 추가 옵션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유럽 등 국제사회와 함께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태도도 핵 안보 협력 체제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신문은 미국이 관련 예산지원을 중단한 이유는 러시아가 미국의 지원에 의존하면서도 핵물질 감축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을 배신하고 호전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양국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내년에 열리는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하며 ‘핵없는 세상’을 내세우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구상에 제동을 걸었다.

양국의 갈등이 치닫자 샘 넌과 리처드 루거 전 상원의원은 WP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양국이 협력에 실패할 경우 전 세계에 핵 테러리즘의 위기를 광범위하게 확산시킬 것”며 “미국과 러시아는 다시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