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beautiful" 거장은 가도 소울은 영원하다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4-12-23 16:39 수정일 2014-12-23 18:03 발행일 2014-12-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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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카커, 그의 음악과 인생
조카커

“그는 모든 음악을 감동적인 영혼의 노래로 항상 바꿔 놓았다.” 조 카커가 70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의 폴 메카트니가 남긴 말이다.

대중들에게 목소리로 평범함이라기보다 특별함을 선물했던 ‘블루아이드소울’의 거장 조 카커. 강력한 허스키 보이스와 기이한 편곡으로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사랑받는 주옥같은 음악들을 많이 만들었으며 흑인 음악의 한 장르인 소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티스트였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우연적인 필연’이었다. 카커는 1944년 영국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에 가스기구 설치기사를 하면서 지내다 우연히 동네 클럽을 방문한다. 노래하던 사람들을 바라보다 음악에 매료됐고 자신의 어렵고 굴곡진 삶을 음악으로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위로만큼 지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음악으로 사랑을 돌려주었다. 고전적인 로큰롤 사운드를 확립한 세계적 기타리스트였던 척 베리와 블루스, 가스펠, 재즈 등 다양한 양식을 아우르며 흑인음악의 성장을 이끌었던 레이 찰스의 명곡들을 카커 특유의 거친 음색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그가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계기는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이다. 25살의 어린 나이에 맹랑하고 재기발랄한 사운드 실험을 시작했다. 당대 신드롬을 일으켰던 비틀즈의 명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를 완전히 다른 곡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드스탁에서 노래를 불렀던 그의 모습은 파워풀한 에너지 덩어리 그 자체였다. 턱까지 내려올 법한 구레나룻과 긴 곱슬머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야수적인 음성을 내뿜었고 당시 비틀스에 열광하던 히피제너레이션들은 그의 열정과 참신성에 연신 박수를 보냈고 축제는 불같이 타올랐다.

이후 1975년엔 세기의 명곡인 ‘유아소뷰티풀(You’re so beautiful)’을 발표하면서 빌보트 차트 17주간 1위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약물 중독과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카커는 1990년대 들어 간간이 콘서트 활동을 하는 한편 미 콜로라도의 작은 마을 크로퍼드로 이사해 어린이 교육을 위한 기금 모금에 힘쓰기도 했다.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매순간 싸우고 어려움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치유를 동시에 줬던 조 카커. 그의 사망 소식에 스타들의 애도도 줄을 잇고 있다. 폴 매카트니는 이날 “존 레넌과 함께 작곡한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를 카커가 영혼의 노래로 바꿔준 것에 고맙게 여긴다”고 회고했다. 링고 스타도 트위터에 “안녕히. 신께서 내 친구 조 카커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기를”이라고 명복을 빌었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