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드득' 눈길 걷다보니 '까르르' 소녀감성 절로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4-12-17 07:55 수정일 2020-05-29 14:45 발행일 2014-12-1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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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투어(삼청공원~숙정문)8
성곽길에서 내려다 본 설경(사진=윤여홍 기자)

뽀득 뽀득 뽀드득.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울린다. ‘을’로 사느라 바쁜 일상과 생존경쟁에 가슴 한켠으로 미뤄두기만 하던 감성을 깨우는 소리기도 하다. 자동차 경적과 길거리를 메운 이들의 목청 높은 고함으로 떠들썩한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이다. 한때는 트렌트 세터들이 모여 들었던, 하지만 지금은 거대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즐비한 삼청동 길 끝자락에 위치한 삼청공원의 눈 오는 풍경은 ‘어메이징’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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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복하게 눈 덮인 삼청공원 3 두 자매가 앉아서 꼭 설경을 봐야한다고 신신당부한 동심의 숲 그네 4 숲속도서관(사진=허미선 기자)

◇ 소녀감성 그녀들만의 설경 감상 그네“이쪽으로 와요! 이쪽으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동심의 숲’ 그네에 앉은 67세, 65세 자매가 온힘을 다해 손짓한다.

“이 그네에서 눈 내리는 거 안보고 가면 바보예요. 여기 앉아서 한 시간 동안이나 눈 내리는 걸 봤어요. 저 소나무 봐요. 웬만한 명소보다 여기가 훨씬 좋아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자매는 소복하게 쌓인 눈밭을 종종 거리며 가면서도 “꼭 한번 앉아서 보고 가요!”라고 신신당부다. 넘어질세라 서로에게 의지해 걸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륵 넘어가는 그녀들의 웃음소리는 소녀를 닮았다.

어디선가 들리는 들뜬 아이들 소리를 따라가니 아담한 삼청공원 숲속도서관이다. “엄마랑 왔는데 눈이 와서 신난다”는 아이들에 도서관 문이 열리며 “감기 걸릴라, 들어와”라고 엄마가 성화다. 간단한 음료를 마시며 몸을 녹이거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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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weight: normal;">1,2 눈꽃의 향연, 가느다란 가지 사이에 간신히 매달린 낙엽 눈꽃(사진=허미선) 3 말바위로 오르는 성곽길(사진=윤여홍 기자)

◇ 눈 치우는 번거로움에도 예쁜 눈꽃의 향연

눈 밟는 소리에 박자를 맞춰 들리는 비질 소리, 이곳에서 일한 지 꼭 3달이 됐다는 공원 관리 직원이다. “이렇게 빗자루 질 해야하는데 눈 오는 게 좋을 리 있냐”고 퉁바리를 주면서도 “여긴 어딜 가도 경치가 좋아. 소나무에 맺힌 눈꽃이 제일 예쁘지”란다.

그의 말대로 공원 내 곳곳에 눈꽃이 탐스럽게도 피었다. 색이 바랠대로 바랜 갈잎에도, 언제나 푸른 소나무에도, 가느다란 가지 사이에 간신히 매달린 안쓰러운 낙엽에도 눈꽃의 향연이다.

“한눈에 보려면 위쪽으로 올라가야 해.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데 그 경치가 아주 좋아. 사진을 찍으면 바로 작품이지.”

삼청공원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60세 할머니는 “내가 보고 좋으면 그게 바로 작품 아냐?”라는 반문과 함께 말바위 전망대를 추천한다. 와룡공원 방면으로 오를 수도 있지만 길이 꽤 험난하니 말바위 입구로 가라는 친절한 설명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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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곽길 따라 오르는 길 2. 성곽길 소나무터널 3. 성곽길 4. 말바위 전망대 위 다정한 부부.(사진=허미선 기자)
◇ 성곽길에서 만난 겨울왕국, 북악산 말바위 전망대말바위 전망대는 한양인구가 10만명 안팎이던 시절 32만명이 동원돼 완공된 서울 성곽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성북동, 수락산, 불암동, 남산, 삼청각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눈발이 제법 굵어졌지만 걷기는 수월하다.

“한성대 입구부터 천천히 올라왔어요. 성곽길을 걸으려고 일부러 휴가를 냈는데 때마침 눈이 와서 멋진 절경을 보게 되네요.”

남양주 법원에서 일하는 공무원 최성호(41)씨는 아내 김도경(45)씨와 성곽길을 걸어 삼청공원으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평소에도 아내와 여기저기 다니는 게 삶의 낙이라는 세 아이의 아빠다. 운 좋게 만난 설경에 두 사람 모두 들뜰 대로 들떴다.

“전망대에서 사진 찍고 내려오는 길인데 온통 뽀얀 눈이에요. 너무 예뻐요.”

그들의 달뜬 목소리에 발길을 재촉한다. 오르고 오르니 날리는 눈발 속에 어슴푸레 성곽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새 쌓인 눈으로 무겁게도 내려앉은 소나무와 성곽이 만나 만들어진 터널을 들어서는 발길이 설렌다. 눈보라로 자욱한 설경 속에 보이는 자그마한 나무쉼터, 그곳의 창으로 내려다 본 서울은 ‘눈의 여왕’ 엘사도 부럽지 않은 겨울 진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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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font-weight: normal;">숙정문 전경.(사진=윤여홍 기자)

◇ 찬사 또 찬사, “다녀본 산 중 제일 예뻐!”“웬만한 서울 산은 다 다녀봤는데 여기가 제일 예뻐요. 올라오는 길이 계단으로 잘 되어있어서 접근도 좋죠.”

말바위 전망대에서 만난 부부, 혼자 산을 오르던 아저씨, 그리고 쉼터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던 유문식(58)씨도 인정하는 설경이다. 365일 등산을 한다는 유씨는 “부암동에서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이 많아서 복잡한데 한편으로는 또 많아서 재밌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말바위 전망대에서 성곽길을 따라 좀 더 걷다 보면 숙정문이다. 서울성곽의 4대문 중 하나인 북대문으로 산책로에 가까운 등산로는 창의문까지 연결된다. 삼청공원을 나서니 그새 먼지와 매연으로 시커멓게 뒤엉킨 눈으로 뒤덮인 도로다. 그렇게 삼청공원은 한겨울 꿈같은 설경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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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추천하는 삼청공원 설경감상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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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박물관

▶세계장신구박물관

월화 휴무 오전 11시~오후 5시

관람료 7000원 02-730-1610

▶오래된 향기 북촌생활사박물관

연중무휴 3~10월 오전 10시~오후 7시

11월~2월 오전 11시~오후 6시

관람료 5000원 02-736-3957

▶북촌동양문화박물관

월 휴무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료 3000원 02-486-0191

▲ 삼청공원 가는 방법

광화문 KT 앞 마을버스 종로 11번 승차 후 삼청공원 하차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