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로 이기고 '엔저'에 발목 잡힐수도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4-12-15 16:26 수정일 2014-12-15 18:28 발행일 2014-12-1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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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압승' 아베노믹스의 향방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하원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일본 경제 상황과 경제 정책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현지시간) 아베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아베노믹스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아베노믹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현재 일본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두 가지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베노믹스는 지난 2년간 아베 총리가 시행한 경제 정책이다. 약 20년간 계속된 일본의 경기침체(‘잃어버린 20년’)를 해소하기 위해 물가상승률 2%를 상한선으로 정하고 ‘3개의 화살’(과감한 금융완화, 탄력적 재정정책, 민간투자 활성화)을 통한 적극적인 경제성장 정책을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의 향후 목표가 15년 간 지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으로부터 일본 경제를 구제해내는 것에 집중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와세다대 와카타베 마사츠미 경제학 박사는 “디플레이션이 일본의 스태그네이션의 주된 요인들 중 하나”라며 “무제한 양적완화(QE)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일본 경제를 침체로부터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가상승률을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소비를 할 충분한 유인동기가 발생할 수 있고 기업은 마음껏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의 진작은 일본의 경제 성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산더미 같은 공공부채를 해결할 수도 있다. 현재 일본 GDP의 240%를 공공부채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경제학자들은 아베노믹스가 성공하기 위해선 ‘세 화살’에 대한 구조적인 개혁이 더 우선돼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토 타카토시 도쿄대 경제학 박사는 “필요 이상의 규제로 시장 원리를 막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허점들을 파악해야 한다”며 “농업과 의료 부문이나 정부에 의한 사회적 기반시설을 민간 업체에 내주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국인 미국을 포함한 캐나다, 호주, 한국 등과의 무역 거래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아베 총리가 정치적 자본을 이러한 정책을 실현시키는 데에 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문은 아베노믹스의 구조적 개혁을 진행하는 방향 역시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는 자민당 내부의 극 보수 세력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고 TPP 국가들과의 무역 거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합의가 성사돼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사설에서 2년 전 아베 총리가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을 때는 시장과 유권자들이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환호했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는 즐거워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아베 총리의 재임 시기에 일본 국민 대부분 삶의 질이 하락했으며 경기침체의 기운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도통신도 15일 경제 전문가들을 인용, 총선에서 승리한 아베 정권이 2017년으로 연기한 소비세 2차 인상을 실행하려면 부진한 실질 임금 상승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현재 엔저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또 임금인상이 부진하고 이자소득이 줄면서 아베노믹스의 정책 효과는 미미해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도 실질 임금 상승이 저조한 것이 특히 일본 경제에 대한 심각한 하강 위협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신문은 유가 하락 효과가 엔저로 상쇄된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쓰비시 UFJ 리서치 앤드 컨설팅의 이가라시 다케노부 연구원은 “엔저로 일본인의 실질 임금이 감소했다”면서 “이것이 가계는 물론 수입 비용 상승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에도 충격을 주고 있어 유가 하락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재계도 아베에게 개혁 가속화를 촉구하고 있다. 하세가와 야스치카 일본 경영자단체연합회장은 14일 성명에서 “개혁 가속화를 기대한다”면서 “경기 회복을 겨냥한 세 개의 화살도 보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