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따뜻한 '집밥' 한 그릇의 행복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14-11-24 18:40 수정일 2014-11-25 18:21 발행일 2014-11-26 14면
인쇄아이콘
166217612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서 보네, 눌은밥에 도라지무침 멸치볶음을 먹었으면” (양희은 ‘나영이네 냉장고’)한동안 방송가를 휩쓴 ‘먹방’이 ‘쿡방’(요리 프로그램)으로 옮겨가면서 대중문화 전반에 먹거리 신드롬이 일고 있다.  

tvN_삼시세끼_이서진고아라옥택연기념사진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는 노동의 대가로 밥 한끼를 차리는 과정의 신성함을 보여준다. (사진제공=tvN)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거나 화려한 요리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요즘 쿡방은 노동의 대가로 밥상을 차리는 과정의 신성함을 보여주고(tvN ‘삼시세끼’) 김밥, 된장찌개, 볶음밥, 비빔국수 등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을 요리 문외한 남성들이 도전한다(올리브TV ‘오늘 뭐 먹지’). 전국 팔도 시골에서 마주하는 전통 음식(SBS ‘잘먹고 잘사는 법)’과 각 고장의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식재료를 접하면(KBS 1TV ‘한국인의 밥상’) 절로 군침이 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음식 프로그램 트렌드가 달라졌다. 예전엔 음식 프로그램들이 단순히 자극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 자체에 포인트를 맞춘다”며 “대단한 음식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음식들을 소개한다”고 분석한다.

쿡방의 인기에 힘입어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서히 진화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유명 셰프들이 냉장고 속 남는 재료로 15분만에 요리를 만들어내는 푸드 토크쇼다. MBC에브리원 ‘최고라면’은 아예 라면이라는 특화된 재료만을 다룬다. 출연진이 전국 8도 특산물과 라면을 조합한 레시피에 도전한다.

TV가 시청자의 먹거리를 걱정한다면 대중가요는 아예 대놓고 ‘밥상’ 예찬론을 펼친다. 양희은은 최근 발표한 새 앨범 ‘2014 양희은’에서 ‘나영이네 냉장고’, ‘막걸리’, ‘김치깍두기’ 등 먹거리를 소재로 한 세곡을 선보였다.

2014112401000971100036033
가수 양희은의 신곡 ‘나영이네 냉장고’ 뮤직비디오의 한장면 (사진제공=FNC엔터테인먼트)

방송인 김나영의 에세이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가사를 만든 ‘나영이네 냉장고’는 싱글족의 아침밥에 대한 로망을 노래했다. 가사는 “아침밥에 로망이 내겐 있어 혼자 사는 누구나 그렇지, 잠자는 나를 억지로 깨워놓고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네, 얘, 모름지기 사람은 아침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한 거야, 먹고 또 자더라도 일단 먹자 어? 아침 먹자”라고 가족과 함께 하는 아침밥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김범수 역시 최근 발표한 새 앨범 타이틀곡 ‘집밥’에서 30대 싱글남성의 외로움과 가정의 소중함을 토로한다. 김범수는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현대인에게 ‘집밥’이란 단어는 각별하다. 공허하고 위축되고 치이는 배고픔은 밖에서 비싼 밥을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며 “나 역시 5년째 혼자 살고 있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갈 때 ‘집밥’ 같은 따뜻한 위로를 느끼고 싶어 이 곡을 타이틀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2014112401010011496
가수 김범수도 신곡 ‘집밥’을 통해 30대 싱글 남성의 외로움을 토로했다. (사진제공=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이처럼 대중가요까지 집밥을 노래하는 트렌드는 각박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2014년 들어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곳곳에서 악재가 터져나왔다.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OECD 회원국 중 2위지만 가계경제는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TV 드라마 ‘미생’처럼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직장인들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노래로 표현됐다는 분석이다.

정덕현씨는 “일상에 쫓기는 도시인들이 끼니를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들, 그 중에서도 엄마가 해주는 한끼 밥에 대한 그리움이 대중문화 전반에 퍼졌다”고 말한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각박한 생활 속 음악이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위로와 안녕이 ‘집밥’이라는 가사를 통해 표현된 것 같다”고 최근의 트렌드를 전한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