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들 90% '알코올 중독' 아니다

김효진 기자
입력일 2014-11-23 17:01 수정일 2014-11-23 18:58 발행일 2014-11-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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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질병통제예방센터 발표

‘나는 즐거운 노동자, 항상 조용히 취해 있네. 술집에서 나를 만나려거든 신성한 저녁에 오게.’ 시인 기형도의 ‘집시의 시집’ 일부다. 술은 일상의 고단함과 상실감을 달래준다.술과 인생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시간이다.

드라마 ‘미생’ 오상식 과장은 토해낸다. “당신들이 술 맛을 알아?” 직장 내 상하관계, 이해관계에서 얻은 좌절을 느낀 직장인은 술로 하루를 풀기도 한다. 술 없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논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라도 하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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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최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술에 중독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통념을 벗어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애주가들이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과도한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10%만이 의학적 기준에서 인정하는 알코올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CDC는 성인 13만8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애주가의 기준은 여성은 일주일에 8회 이상, 남성은 15회 이상 술자리를 갖는가였다. 한번 술을 마실 때 여성은 맥주 4캔(한 캔당 355㎖)이상, 남성은 5캔 이상 마시는가도 애주가의 기준이 됐다.

알코올 중독자의 의학적 판정 기준은 스스로 음주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술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로 정했다. 지속적인 음주로 가정과 직장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포함했다.

연구 결과, 연구 대상자들 3명 중 1명이 평소 과도한 음주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중 알코올 중독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3.5%밖에 되지 않았다. 애주가가 많았던 집단은 18~24세 남성과 중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책임 연구자 로버트 브루어 박사는 “과도한 음주가 절대적으로 알코올 의존과 중독을 유발시키지는 않지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며 “알코올 사용장애를 단지 ‘중독’이라는 틀로 가두지 말고 술을 적게 마셔야 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그의 시에서 말했다.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 죽기 전 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 뿐. 나는 잔을 들며 그대 바라보고 한숨 짓는다.’ 뛰어난 시인이자 극작가인 그도 사랑에 대한 슬픔을 술로 달랬다.

김효진 기자 bridgejin100@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