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미래 있다" 세계 대학들 수천억대 미술관 공사

권익도 기자
입력일 2014-11-16 19:40 수정일 2014-11-16 19:40 발행일 2014-11-1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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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류대학 예술경쟁 돌입,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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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필리프 국왕(오른쪽)과 마틸드 왕비가 지난 2003년 미 스탠포드대 후버 미술관에서 벨기에 예술전을 관람하고 있다.(AFP)

한국 현대미술가 서도호는 설치작품 ‘고등학교 교복’에서 자신이 다녔던 경신고 교복 60개를 이어 붙여 당시 한 학급 규모를 표현하는 입체물을 완성시켰다. 언뜻 보면 가로 세로 일렬로 나열돼 있는 교복들은 과거 세대의 학창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작품에는 그와 반대되는 의미가 내재해 있다. 한국 사회의 권력과 집단적 통제 그리고 몰개성성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현재 한국 대학들의 미술관에 대한 관점이 바로 몰개성성의 정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서울대와 홍익대 등을 제외하고 대학이 직접 나서서 미술관을 설립한 경우가 별로 없다. 연세대와 고려대의 경우 자체 박물관을 두고는 있지만 전시의 대상과 기능적인 면에서 미술관과 차이가 있을뿐더러 유물, 유적 수가 13만점 정도로 해외 유명 대학들과 비교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연세대의 경우 박물관 온라인 홈페이지조차 없다.

반면 해외 일류 대학들은 우리나라 대학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미 하버드대는 6년 만에 다시 미술관을 열었다. 현대 건축의 걸작 파리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 출신의 렌조 피아노의 지휘 아래 보수 공사가 이뤄졌다.

교내 재정팀은 학교의 재정적 위기 상황에서도 미술관 보수 공사가 학생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계획안을 밀어붙였다. 투자 금액은 4억 달러(약 4400억원). 새로 연 하버드대 미술관은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도 튼실하다. 예술 보존 서고, 학생들과 교수들이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까지 전문적으로 갖춰졌고 예술품도 25만여점에 달한다.

하버드 미술관장 토마스 렌츠는 “미술관에 대한 투자가 학생들의 인문학 정신을 고양시키고 학교 학생들 간 상상력이 가득한 토론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보고 있다”고 말한다.

예일대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는 지난 2012년 학교 자체 예산 1억3500만 달러(1400억원)를 들여 ‘아트갤러리’ 건물의 보수 공사를 시행했다.

전문적인 큐레이터들을 고용하고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관리하는 체계와 유사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공사 이후 방문객 수가 2배로 뛰어 연간 20만명이 미술품을 감상하러 오고 있고 대학 미술관이 지역 경제 양성에도 일조하고 있다.

이외에도 스탠퍼드대나 시카고대, 프린스턴대는 학교가 직접 미술, 영화, 공연 등의 예술들을 하나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아트센터를 운영 중이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데미안 허스트, 안토니 곰리. 이름만 들어도 짜릿한 90년대를 주물렀던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다.

이들의 출신지 골드스미스대는 어떨까? 대학 자체가 예술품이다. 대학 본관 바닥부터 러시아 출신 몬드리안의 작품과 같은 격자무늬 양식이 있다. 미술관을 포함해 각 건물엔 허스트와 곰리의 작품들이 곳곳에 설치돼 학생들의 미술적 영감을 떠올리게 도와준다. 골드스미스 학생들의 졸업전시엔 세계적인 콜렉터인 찰스 사치나 아티스트 안토니 곰리가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연세대는 서울 신촌캠퍼스에 금호아시아나 그룹에서 투자한 50억으로 다목적 공연장인 ‘금호아트홀’ 착공에 돌입했다. 학교 측에선 낙후된 조경과 경관을 개선하기 위한 문화적 탈바꿈이라는 수사를 쓰고 있다. 과연 학생들을 위한 투자일까? 그 속에 학교와 기업 간의 ‘윈윈 구조’가 숨어 있진 않을까?

권익도 기자 bridgeut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