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서울 투어] ⑤ 길상사<Br>떨어지는 낙엽·목탁소리 울리는 고요한 산책길
|
법정 스님이 짓고 마지막 가는 길에 머물렀던 서울 성북동 ‘길상사’는 단풍으로 가을 색이 만연하다.
법정 스님 유골 앞에 선 한 여인이 까만 봉지를 꺼낸다. 봉지 안엔 잘 익은 귤 4개가 들어 있다. 망설이던 그녀는 그 중 2개를 골라 스님에게 건넨다. 짧게 목례를 하고 돌아서던 그녀는 남은 귤 2개도 꺼내 놓는다.
서울 신당동에서 왔다는 정현진(35)씨는 "내가 먹을 걸 남기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며 "괜한 집착을 버리니 마음이 편하다. 스님이 강조하는 '무소유'에 대해 이제야 조금 알겠다"며 웃는다.
비움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소, '길상사'는 잠시 눈만 돌리면 가까이 있는 휴식처이자 수양지다.
◇ 자연을 즐기는 산책길‘길상사’는 생각보다 넓다. 본법당 극락전을 중심으로 왼쪽엔 설법전이 있고 오른쪽엔 도서관이다.
절을 둘러보며 걷기 좋은 산책길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몸으로 맞으며 고풍스런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보통의 등산에서 접할 수 없는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리는 목탁, 스님들이 외는 염불은 차라리 자연의 소리인 듯 고요히 산 속으로 울린다.
|
◇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는 명상의 길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지는 사색과 명상의 공간, ‘길상사’ 침묵의 집이다. 곁에 있는 것이라곤 부처님이 그려진 두루마리가 전부다. 눈을 감으면 그림은 잠깐의 잔상으로 남다 사라지고 짙은 어둠이 주변을 삼킨다. 주변의 잡음이 사라지고 어둠이 익숙해질 즈음 마음은 고요해진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 이야기로 만나는 문학의 길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 1996~1921)과 기생 자야(본명 김영환 1916~1999). 애틋한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길상사’를 있게 한 모티브다. 6.25 전쟁으로 남쪽에 홀로 남게된 자야는 백석을 기다리며 ‘길상사’가 있는 곳에 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다 1995년 사찰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전 재산을 시주했다. 절 한쪽에는 공덕주 길상화(김영환 법명)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불교인이자 문학가인 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 유골이 모셔진 진영각이 있다. 글을 쓰던 연필과 만년필은 정갈하고 잘 길들여진 손때가 묻어난다. 스님 문장에서 느끼던 소박함과 깊이를 닮았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