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에 스민 진한 커피향…삶이 더 그윽해졌죠"

조민영 기자
입력일 2014-10-21 14:54 수정일 2014-10-21 15:15 발행일 2014-10-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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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잊은 사람들] - 60대 바리스타 변정숙·박신자씨
나이 들었다고 뒷걸음질 치기보다 많이 움직이고 마음껏 도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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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을 넘긴 나이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커피 전문점 '산아래카페'에서 음료를 준비하고 있는 변정숙씨(왼쪽)와 박신자씨.

“나이 들었다고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기만 해요. 이렇게 일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야 삶에 활기도 생기고 살맛이 나죠.”

14일 서울 은평구 불광 보건분소 2층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산아래 카페’. 오후 2시가 되자 가게 안 9개의 테이블이 손님으로 북적였다. 주문대에는 환갑을 넘긴 종업원이 손님을 맞았다.

◇ 향·멋에 취하고 새로운 만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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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어요?” “아메리카노요.” “잠시만 자리에 앉아 기다리세요.”

하얀색 블라우스에 갈색 앞치마 차림의 종업원은 이 카페의 바리스타 변정숙(69·여)씨다. 3년차 바리스타인 변씨는 2012년부터 ‘산아래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주부로만 40년을 살다 은평구 복지관의 일자리 창출 교육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라멜 마키아토’ ‘카라멜 모카’ ‘카페라테’ ‘에스프레소’처럼 낯선 이름 때문에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커피를 뽑는 변씨의 얼굴에 여유가 가득했다.

변씨는 “나이 먹고 활동을 하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봤다”며 “그러다가 우연히 노인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발견해 신청했다”고 말했다.

필기 및 실기시험을 치르고 한창 때인 젊은이들과 경쟁하기란 예상대로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꼭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일념 아래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고, 덕택에 모든 시험을 단번에 통과했다.

바리스타로 접어든 지 5개월째인 박신자(66·여)씨는 “어린 시절부터 해보고 싶던 일이었다”며 “향기와 멋에 취하고 새로운 만남까지 있다.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냐”고 되물었다.

박씨는 첫 손님을 받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직접 만든 커피를 처음 내줄 때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 많이 됐죠. 다행히 손님들 반응이 좋아서 기뻤죠.”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지 다섯 달이 지났지만 가끔씩 식은땀이 날 때도 있다. 재료나 순서가 헛갈려 당황할 때다. 초반에는 만드는 속도가 더뎌 손님이 많은 점심시간에는 줄이 길어졌지만 이젠 웬만큼 속도가 나오는 것 같다며 웃음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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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불광 보건분소 2층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산아래카페' 입구.

◇ “일하니 더 건강해져요”

커피 전문점이 주거지역에 위치하다 보니 찾는 이들은 20~60대까지 다양하다. 카페 손님의 절반 이상이 매일 들르는 단골이다. 변씨와 박씨는 이곳에서 ‘친정엄마’, ‘왕언니’로 통한다.

변씨는 “여기서 일하면서 다양한 세대의 젊은 사람들과 호흡하니 제 나이를 잊고 지낸다”며 “이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나도 굉장히 젊어지는 것 같고 더디게 늙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60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한때 몸이 안 좋았다는 두 사람은 바리스타로 일을 하며 건강도 되찾았다고 한다.

“일을 하니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집에 있으면 처지고 나태해지잖아요.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화장도 하고 옷 매무새도 신경 쓰게 되죠.”

◇ 많이 듣고 봐야 일할 의욕 생긴다

복지관에서 다양한 강좌를 통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두 사람은 또 다른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박씨는 “많이 돌아다니고 사람들도 만나면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며 “나이 들었다고 뒷걸음질 치기보다 겁내지 말고 원하는 일에 마음껏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들은 노인 인력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냈다.

변씨는 “모두 다 정식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전문적으로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이가 있어 종일 근무는 어렵지만 파트타임으로 하면 더 많은 노인들이 함께 일을 할 수 있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글 = 조민영 기자 mine8989@viva100.com·사진 = 윤여홍 기자 7000-ja@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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