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전 FRB 의장, 대출연장 거절된 사연은

김효진 기자
입력일 2014-10-05 19:44 수정일 2014-10-05 19:46 발행일 2014-10-0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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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FRB 의장, 비정규직 이유로 거절
은행들 금융위기 이후 조건 엄격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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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사진)가 최근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연장을 받으려다 거절당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등 현지 언론은 4일(현지시간) 버냉키 전 의장이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FRB 의장이라는 ‘정규직’에서 ‘은퇴한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시중 은행으로부터 부인과 공동 명의로 된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 10만달러(약 1억원)의 상환기한을 연장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지금 한 번 강연에 3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는데다 잠재 수입 규모도 엄청나다. 실제로 그는 의장 퇴임 두 달 뒤 아부다비국립은행(NBAD)이 후원한 강연회에 참석해 40분간 연설을 한 뒤 수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받기도 했다. FRB 의장으로 지내던 현역 시절 얻던 수입보다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이 황당한 해프닝은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은 뒤 대출조건을 까다롭게 높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미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신용 등급이 취약한 사람들이 대출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전 세계적인 위기를 일으켰다.

버냉키 전 의장은 “금융위기 이후 규제당국이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데 따라 은행들이 직업과 소득의 안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해줄 때 규제당국의 단속이나 대출금을 회수하는 일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일은 현재 은행들이 버냉키 전 의장처럼 대출금을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고 소득을 불리는 수단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악용하는 고소득층에 일침을 가하는 사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미국진보센터(CAP)의 재정정책 담당자 해리 스테인은 “미국 재정 정책을 이용한 고소득층의 투기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60세인 버냉키 전 의장은 2006년부터 4년 임기의 의장을 두 차례 지낸 뒤 지난 1월 재닛 옐런에게 자리를 내줬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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