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둔 남편을 기다리는 기억상실 아내의 절절함

김동민 기자
입력일 2014-10-05 16:49 수정일 2014-10-07 16:12 발행일 2014-10-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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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5일의 마중'에 출연한 배우 공리.(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로 약속한 매월 5일이면 아침 일찍부터 기차역으로 나간다. 기차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철문이 닫히고 나서야 아내는 실망을 애써 감춘 채 발걸음을 돌린다. 그 옆에는 아내를 부축하는 남편이 있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중국 출신 거장 장이머우 감독의 ‘5일의 마중’은 기억을 잃은 채 남편을 곁에 두고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이야기다.

‘5일의 마중’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중국 전역에 극좌 광풍을 일으킨 문화대혁명으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린 가족의 비극을 보여준다. 영화는 중국 작가 옌거링(嚴歌笭)의 인기 소설 ‘육범언식’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문화대혁명 시기 정치적인 신념으로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된 남편 루옌스(진도명)를 기다리는 아내 펑완위(공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루옌스는 석방돼 집으로 돌아오지만 펑안위은 기억상실로 남편과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대학교수인 루옌스(친따오밍 분)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아내 펑완위(궁리)와 어린 딸 단단(장후이원)을 남겨둔 채 투옥된다.

영화는 10여년간 연락 한 번 할 수 없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다 못한 루옌스가 탈옥해 집을 찾아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펑완위는 루옌스를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된 당의 명령에 고민하지만, 아내로서의 본분을 다하기로 한다. 이미 마오쩌둥 사상에 세뇌당한 단단은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다.

부부의 가슴 졸이는 재회는 결국 불발된다. 다시 끌려간 루옌스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심인성 기억장애로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5월의 마중’은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가 끝나고서도 오래도록 기억나는 영화다. 관객들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부부의 이별 장면부터 마음을 빼앗긴다. 서로 찾아 헤매다 엇갈리는 아내와 남편의 모습은 관객들을 함께 애타게 하고 찐빵과 이불을 정성스레 싼 아내의 보따리가 내팽개쳐지는 장면은 결국 눈물을 유도한다.

수년 후 그토록 그리워했건만 정작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펑완위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남편의 이 정도 노력이라면 펑완위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라는 관객의 희망을 영화는 번번이 배반한다.

<부산영화제>질문에 답하는 장이머우 감독<YONHAP NO-0660>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월석아트홀에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5일의 마중’ 기자회견에서 장이머우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

‘5일의 마중’을 연출한 장이머우 감독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다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가 희망을 품고 사는 이유”라며 “어려운 현실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작품의도를 밝혔다.

장이머우 감독과 배우 공리가 7년만에 재회하면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된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문화대혁명은 장이머우 감독의 삶에도 큰 흔적을 남겼다. 그는 “16부터 26세까지 문화대혁명 시기를 보냈다”며 “가장 성장이 활발했기에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이 남은 시기”라고 털어놓는다. 이어 “심리묘사를 통해 한 가정이 와해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깊이 고찰할 만한 주제”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배우 공리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공리는 이번 작품으로 ‘황금시대’ 탕웨이와 함께 대만에서 열리는 제 51회 금마장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장이머우 감독은 “연출자로서 작품에 출연한 주연배우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기쁜 일”이라며 공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5일의 마중’은 영화제 기간인 4일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 8일 CGV 센텀시티 스타리움관, 10일 CGV 센텀시티 스타리움관에서 상영된다. 국내 정식 개봉은 10월 8일이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