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장수상품] ⑬ 칠성사이다/ 7명의 동업자 '칠성(七姓)'에서 '칠성(七星)'으로…

조은애 기자
입력일 2014-08-08 16:28 수정일 2014-08-14 14:00 발행일 2014-08-0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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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사이다 병(연합)

‘칠성’은 보통 ‘일곱 개의 별’을 의미하지만 칠성사이다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칠성’은 다른 의미였다. 사이다 공장을 함께 차린 동업자 7명의 성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에서 ‘칠성(七姓)’이었다. 나중에 가서야 ‘칠성(七星)’으로 바뀌었지만 우리가 줄곧 알고 있던 음료수 ‘칠성’은 일곱 사람에게서 출발한 셈이다. 

칠성사이다는 6·25 전쟁이 발발하기 바로 직전인 1950년 5월에 태어났다. 회사명은 총 4차례나 바뀌었지만 제품명에 ‘칠성’이라는 이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이다가 처음 한국에 소개된 것은 구한말에 일본을 통해서였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일본의 금강사이다, 경인합동사이다가 있었고 1945년 해방 직후에는 서울사이다, 삼성사이다, 스타사이다 등 국내 기업에서 만든 사이다가 경쟁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사이다라는 명명은 잘못된 것이다. 외국에서 말하는 사이다는 사과주와 같은 탄산을 넣은 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무알콜 탄산음료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다르게 전파됐다. 외국에서 사이다를 먹고 싶으면 ‘레몬 라임 소프트 드링크(lemon lime soft drink)’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 알아두면 실수로 술을 마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칠성사이다가 대중적인 인기를 받게 된 데는 1970년대 “슈슈슈바 슈리슈바”로 시작하는 작곡가 길옥윤씨의 CM송이 히트를 치면서부터다. 1976년부터 2년간 선보인 CM송 “일곱 개의 별마다 행운이 가득한 칠성사이다, 반짝이는 방울마다 젊음이 가득한 칠성사이다”는 혜은이씨가 불렀던 노래로 크게 화제를 일으켰다.

 

1980년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킨사이다, 세븐업, 천연사이다 등 수많은 사이다 브랜드가 나오면서 사이다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칠성사이다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칠성사이다의 시장 영역만 넓혀줬다.

칠성사이다가 장수할 수 있던 데는 소비자의 ‘길들여진 입맛’이 큰 몫을 했다. 이미 오래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우호적인 이미지로 다가갔다. 다른 공은 CF에게로 돌아간다. 1970년대 후반 난방 설비가 좋은 아파트가 보급되자 칠성사이다는 ‘역시 겨울에도 칠성사이다는 좋습니다’라는 CF를 내보내며 추운 겨울날에도 그 시원함의 아성을 꿋꿋이 지켰다.

2000년대에는 ‘맑고 깨끗한 칠성사이다’를 강조하면서 우포늪, 독도 등 한국의 중요 자연유산지역이 배경이 된 CF를 제작했다. 현재 음료시장은 전체적으로 포화상태다. 생수나 건강음료 등 다양한 음료 브랜드가 출시하면서 탄산음료 시장도 전체 매출 규모가 하락했다. 하지만 칠성사이다는 2013년 전체 사이다 시장의 8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단일 품목으론 약 34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

조은애 기자 sincerely.ch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