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장수상품] ⑥ 투게더/ 40년 넘게 이어온 비결은

조은애 기자
입력일 2014-07-31 14:18 수정일 2014-08-26 18:26 발행일 2014-07-2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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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한국 최초 고급아이스크림으로 선보여
'가족'이라는 마케팅 전략으로 지금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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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빙그레)

1988년 밤이 깊어가는 시각, 잠들 시간 한참 지난 10대 아이들이 거실을 꿰차고 있던 이유는 퇴근하실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신이 한 손에 꼭 쥐고 들어오실, 아이들 얼굴만한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던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도착한 아이스크림에 가족 모두 너나할 것 없이 수저를 들이대면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빙그레를 대표하는 아이스크림 투게더는 1974년 1월 ‘한국 최초 생우유로 만든 고급 아이스크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첫선을 보였다.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투게더”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있는 투게더 cf광고 문구다. 빙그레는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독자적인 기술로 연구한 끝에 1974년에 투게더를 선보였다.

당시 10원짜리 아이스바에만 익숙했던 국민들에게 투게더는 아이스크림계의 혁신이었다. 당시 투게더는 800cc 한 통에 600원이었다. ‘1970년대에는 1000원으로 가방을 샀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당시 물가로 볼 때 매우 높은 가격이다. 투게더는 매일 먹지는 못하되 생일날이나 월급날 같은 특별한 날에 가족끼리 두런두런 앉아 먹는 고급 아이스크림이자 가족 아이스크림이었다.

실제로도 투게더는 고급이었고 빙그레는 이를 마케팅 전략으로 밀고 나갔다. 생우유 100%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니 얼음에 색소만 넣었던 당시 아이스바와는 비교가 어려웠다. 황금색 용기에 판매한 것도 고급화 전략 중 하나였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이 가속화하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국민들 경제수준도 함께 높아졌고 질 좋은 상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다. 실제로 투게더는 당시 우유가 모자라 생산이 원활하지 못해 월 2만~3만개 정도만 생산했으나 고가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 투게더의 고급화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투게더의 고급화 전략은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아이스크림으로 지정되는 데까지 이른다. 형식적인 공식지정이 아니었던 이유는 황금색 용기 덕에 있었다. 1, 2위전에서 마침내 한국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시청자들도 함께 황금색 투게더 뚜껑을 땄다. 어린 아이들은 투게더 뚜껑을 들고 한국이 금메달을 딴 것에 환호성을 질렀다.

투게더의 또 다른 마케팅 전략은 바로 ‘가족’이다. 첫선 때부터 ‘가족과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미지로 밀고 나갔고 그 전략은 ‘가족사랑 캠페인’, ‘가족사랑 명예전당’, ‘가족사랑 투게더’ 등으로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4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투게더는 올해 아이스크림 부문 국가브랜드대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 2000년에는 한국능률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브랜드파워 1위에 선정됐다. 빙그레측에 의하면 작년 투게더는 3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40년간 누적 판매량은 2억개다. 빙그레는 올해 투게더 탄생 40주년을 맞아 경품행사와 대형마트 할인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1974년 600원에 구입했던 투게더는 현재 소비자가격 5000원이다. 해외 아이스크림 업체들도 다수 들어선 지금은 투게더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초창기 출시했던 바닐라맛 이외에도 투게더는 베리베리굿, 프럴린&아몬드, 카카오무스, 호두맛 등 내놓으며 녹록치 않은 아이스크림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조은애 기자 sincerely.ch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