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김누리의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저자는 “세계 최악의 경쟁 교육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극단적 무력감과 혼란만 가져오는 지금의 경쟁교육으로는 희망이 없다며, ‘교육혁명’만이 답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경쟁-능력주의-공정 이데올로기로 연결되는 ‘야만의 트라이앵글’을 깨부숴야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경쟁의 긍정적 효과를 과소평가하고, 부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균형감은 아쉽지만, 교육개혁이 시급하다는 대의(大意)에는 공감이 간다.
저자는 “교육이 존엄한 인간, 개성 있는 자유인, 성숙한 민주시민을 기르는 일이라면 우리는 교육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라”라고 일갈한다. 역대 모든 정부가, 교육을 받을수록 더 나쁜 인간이 되는 ‘반(反) 교육’을 해 왔다고 비판한다. 우수한 아이와 열등한 아이로 끝없이 나눠 차별하니 어릴 때부터 불행을 내면화할 수 밖에 없다며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라고 반문한다. 소수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다수의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구조이니, 패자는 열등감과 모멸감을 내면화하며 자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아무리 천재성을 가진 아이라도 한국 교실에서 12년을 지내고 나면 그저 ‘준수한 범재’가 되어 버린다”고 비판한다. 우열 반까지 만들어 약하디 약한 자아마저 망가트리니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거의 제로인 인간으로 자랄 수 밖에 없다고 개탄한다. 저자는 “진정한 교육은 아이들 안에 있는 고유한 것을 끄집어낼 뿐만아니라 ‘강한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라며 “독일은 그런 인간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고 꼬집는다.
◇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학교
반면에 독일에서 대학은 가장 민주적인 곳, 가장 권력 비판이 예리한 곳, 가장 사회정의가 확실하게 구현된 곳으로 평가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대학이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공간이라면, 한국 대학은 가장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공간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군사독재에 이어 자본독재 세력이 지배하면서 대학의 기업화가 보편화되었다고 꼬집는다. 유례 없이 많은 사립대학,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정부는 단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우리 교육부의 유일한 정책은 대학 입시 뿐”이라고 비판한다.
◇ 경쟁교육은 야만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중 가장 심각하고 근원적인 문제가 ‘경쟁’이라고 단언한다.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경쟁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경쟁 없는 교육은 하향 평준화를 낳는다는 그릇된 신화가 만들어져 버렸다고 지적한다. 그 탓에 우리에게 경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바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이 교육을 통해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 교수조차 능력주의를 ‘사회의 공동선을 다 때려 부수는 폭군’으로 비유했다면서, 오랜 구조적인 경쟁의 결과로 한국 사회는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모멸로 구조화된 사회가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끝없는 경쟁과 끔찍한 자기착취를 ‘자기계발’로 합리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평등’보다 ‘공정’을 외치는 이면에도, 가진 자들의 특권을 지켜주는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 독일 교육, 정답은 아니어도 해법은…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 ‘피사(PISA)’에서 독일은 늘 중하위권이다. 평가 방식이 독일의 비판교육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고학년까지 독일 학교 수업은 오후 3시 이전에 모두 끝난다. 이후로도 과중한 학습노동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한다. 숙제 시간까지 제한을 둔다. 시험도 일주일에 두 과목, 하루에 한 과목 이상을 볼 수 없게 한다. 독일 초등학생들은 4년 동안 한 두 명의 교사에게 배운다. 초등 과정을 마치면 인문계 김나지움 혹은 직업계 하웁트슐레·레알슐례 중 어디 갈 지를 결정하는데, 이 때 누구보다 학생을 잘 아는 교사의 진로 조언이 결정적이다.
독일은 경쟁과 서열, 학교 간 경쟁이 없다. 대학입학 때도 입학 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가 전부다. 시험을 통과하면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대부분 주에서 아비투어 성적은 20% 정도만 반영한다. 이른바 의대, 철학과 등 인기학과는 경쟁이 심해, 준비를 하면서 몇 해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 대기시간을 20% 반영한다. 7년 정도를 대기하면 누구나 의대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공부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성적 순대로 학과가 결정되는 한국과 천양지차다.
◇ 현실적 비판 의식 키워주는 독일 교육
저자는 특히 역사 교육의 차이를 강조한다. 독일은 최대 치욕인 나치 시대와 동·서독 분단의 현대사를 역사 교육의 핵심으로 해 성공적인 과거 청산을 이루었다. 다시는 그런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역사적 공감대를 이룬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근현대사를 비중 있게 가르치지 않으니, 현재의 자신도 모르고 비판 능력과 성찰 능력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또 함께 더불어 사는 연대와 공생이 필수라고 가르친다. 2023년부터는 초·중학교에서 환경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생태환경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실천을 유도한다.
◇ 교육혁명의 주체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저자는 근본적인 교육 혁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인간을 길러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이제까지 교육현장에서 ‘지옥’을 체험했던 ‘교육 희생자’ 들이 그 핵심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교육으로 엄청난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한 기득권 계급은 교육개혁의 의지도 없고, 맡겨서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일은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면서, 과거 50년 전의 선배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성숙한 민주시민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저자는 잃어버린 교사들의 권위를 찾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독일 교사들은 엄청난 권위와 함께 반권위적이기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지만 한국의 교사는 권위주위적인데 권위는 없다”고 꼬집었다. 독일에서는 교사가 되려면 상당한 수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 최소한 초등학교 교사는 6년, 중·고교는 7년의 양성과정이 걸린다. 실제 대학 과정을 마치는데 평균 8~9년이 걸린다. 이후 2년의 수련 기간을 거치고 학사·석사 논문도 써야 한다. 1차 국가 임용고시에 붙어도 ‘레페렌다이아트’라는 18~24개월의 수련기간과 학교 근무 평가를 통과해야 2차 국가고시를 볼 수 있다.
◇ 교육이 바뀌어야 미래가 보인다
저자는 교육혁명을 위해 세 가지를 폐지하자고 제안했다. 먼저, 찍기 전문가를 양산하는 획일적인 대학 입학시험이다. 두 번째는 대학 서열이다. 전국 국·공립대를 하나로 묶어 1대학, 2대학 식으로 재편하고, 사립대는 공영화 후 정부가 전폭 지원해 공적 책무를 다하도록 함으로써 불필요한 경쟁을 없애자는 것이다. 마지막은 대학등록금이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생들이 공부보다 아르바이트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도 2차 대전 패전 직후인 1946년에 대학 무상교육을 시작했다”면서 이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