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이순신에 미친 자, 그의 이름은 김한민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3-12-25 18:30 수정일 2023-12-25 18:30 발행일 2023-12-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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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노량: 죽음의 바다' 완성
"세계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정신 퍼져나갔으면......"
KimHanmeennoryang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를 통해 이순신 3부작을 완성한 김한민 감독. 세월호 참사로 개봉을 못 할 뻔한 ‘명량’과 코로나로 인해 촬영이 어려웠던 ‘한산’,‘노량’이 공개되기 까지 김한민 감독이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1700만명이 본 영화 ‘명량’의 성공 후 김한민 감독은 확신에 차 말했다. ‘이순신 3부작’을 구상 중이며 한산대첩으로 불리는 전투와 노량해전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들 입을 모아 “대단하다” 치켜세웠지만 동시에 “그게 되겠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따라왔다.

김한민 감독의 열망은 10년 만에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한 ‘노량: 죽음의 바다’를 끝으로 결론이 났다. 2022년 ‘한산: 용의 출현’ 이후 각기 다른 세 명의 배우 최민식, 박해일, 김윤석을 캐스팅하는 획기적인 기획까지 성공시켰다.

노량 포스터
임진왜란 발발 6년 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김윤석) 최후의 전투를 그리며 개봉 첮 구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포기하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해상 전투 장면의 경우 물 없이 찍는 게 가능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우리지만 100분에 달하는 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자괴감이 컸죠. ‘100분의 해전은 좀 힘들거야’란 순간도 있었지만 그 장면이야 말로 성웅 이순신의 마음과 정신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신이란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렇게 정신을 차린거죠.”  

노량해전은 거북선을 필두로 조선의 지원군인 명나라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왜군의 배까지 무려 1000여척이 뒤엉켜 벌인 동북아 역사상 최대 해상전투다. 검은 파도가 치는 밤바다와 동 트는 순간까지 각국 장수들의 지략 싸움이 팽팽하게 맞붙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왜군의 살기와 최소한의 피해로 마무리하자는 명의 안이함 속에서도 이순신은 끝까지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며 전투를 이어간다.

적들이 퇴각하려 하고 모두 ‘다 끝난 전쟁’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은 가장 아끼던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지만 다시 집요하고 치열하게 이 전쟁을 끝까지 수행한다. 왜 그렇게까지 ‘확실한 항복’에 매달렸는지는 ‘이순신에 미친자’로 산 지난 세월동안 감독을 잡아 끈 화두기도 했다.

“왜나라 수군에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면 조선은 또 다시 위기에 처할 거라는 걸 장군님은 분명히 아셨을 겁니다. 이건 저만의 해석입니다만 완전한 항복과 종결의 뜻을 알게 되니 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만들어야 할 작품을 운이 좋아서 만들게 됐고 보여드려야 할 작품을 보여드리게 돼 뿌듯함이 크죠. 장군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천행(天幸, 하늘이 준 행운)이 아닐까요?”

‘노량: 죽음의 바다’의 액션 시퀀스는 단 한 차례도 바다에 배를 띄우지 않고 대부분 장면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입혀 가며 완성했다. 김 감독은 “‘노량’에서 쓴 거의 모든 기술은 ‘명량’ 땐 할 수 없던 것”이라며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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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에도 늘 ‘난중일기’를 본다고 했다. “몇 번을 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늘 위로와 용기를 얻는 책”이라며 다독을 추천했다.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가장 큰 난제는 이순신의 최후를 그리는 장면이었다. 이 3부작은 사실상 이 시퀀스를 향해 달려왔으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대사를 아예 영화에 넣지말까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타이밍이 관건이었는데 어떻게 찍든 밑지는 게 보이는 촬영이었지만 그 말을 담지 않으면 올바른 결말이 아닐 것만 같았다.  

“이름 없는 명나라 군사부터 시작해 이름 없는 조선 군사, 이름 없는 일본 왜병 그리고 그 끝에 이순신 장군이 보이도록 장면을 설계했습니다. 이순신 정신의 리마인딩이랄까. 모두가 두려움에 빠진 상황을 용기로 전환시키는 그 정신은 지금의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자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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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장군님이 꿈에 나온적이 없다는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노량’으로 마무리됐지만, 이순신 장군이 표면적으로 나오지 않는 이순신 장군을 이야기를 구상중”이라며 “한번 쯤 나오셔서 격려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웃어보였다.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노량: 죽음의 바다‘에는 특별출연으로 나선 배우들의 활약이 유독 돋보인다. 이제훈은 광해 역으로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하고 여진구는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으로 출연한다. 특히 이면의 등장은 이순신이 장군이기에 앞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스크린에 구현해 낸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에 대한 보복으로 아산현을 습격한 왜군에 항쟁하다 21살의 나이로 전사한 막내는 난중일기에 절절하게 기록돼 있다.

“이면은 이순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인데 효심 가득하고 기골장대하고 반듯한 청년의 느낌을 여진구가 갖고 있었어요. 이제훈의 가진 차분함과 결단력이 광해를 잘 표현했고요. ’한산: 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를 연달아 찍으신 안성기 선배님이 건강 회복 후 부족한 부분을 소화해 주셨고요. 출연한 모든 분들이 저에겐 큰 은인이세요.”

 

영화 ‘봉오동 전투’의 제작자이자 할리우드에서도 주목하는 이순신 장군 3부작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김한민 감독에게 “당신에게 애국심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과거 ‘최종병기 활’에서도 병자호란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한을 아울렀던 그이기에 궁금해진 대목이었다. 감독이 된 후로 그리고 이 작품을 무려 10년 동안 찍으면서도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라며 긴 시간 생각에 잠긴 그는 소문난 역사광답게 창세신화 ‘부도지’를 쓴 박제상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 역사 속에 제대로 종결이 되지 않아서 지속적인 불행을 낳는 사례들이 있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잖아요. 애국심을 감히 정의내리자면 ‘한국인의 피에 새겨진 하늘의 뜻’이 아닐까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