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누구의 아내, 엄마가 아닌 '오롯이 한채아'로 돋보이는!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3-12-18 18:00 수정일 2023-12-18 18:14 발행일 2023-12-1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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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한채아
"동생과 싸우는신 좀 더 격정적으로 할 껄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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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개봉한 ‘비정규직 특수요원’ 이후 6년만의 내놓은 영화 신작인 이 작품은 결혼 후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촬영을 진행한 작품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사진제공= 판씨네마(주))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의 세 딸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전형적인 장녀로 살아가는 혜진, 집안의 자랑으로 서울 방송국에 다니는 둘째 혜영(한선화), 모범생이지만 가족 몰래 춤에 미쳐 있는 막내 혜주(송지현)까지. 아빠의 기일에 모인 딸들은 올해도 5만원만 보내온 작은아버지 험담에 여념이 없다. 제사가 끝날 즈음 술에 잔뜩 취해 오는 그런 시동생에게 엄마 화자(차미경)는 양손 가득 음식을 싸서 보낸다.

“일찍 간 우리 형 불쌍해서 어쩌냐”고 우는 작은 아버지의 고정 멘트가 달리 들리게 된 건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고서다. 배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녔던 아버지는 비록 엄마를 외롭게 했을지언정 딸들에게는 부족함 없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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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아는 차범근의 막내 아들 차세찌와 지난 2018년 5월 결혼, 이후 첫 딸을 품에 안으며 엄마가 됐다. 남편은 늘 “처음 만났을때보다 지금이 더 예쁘다”며 마음속에 아닌 말은 절대 안하는 T기질의 남자로 위안을 주는 존재라고. (사진제공= 판씨네마(주))

맛있는 단팥죽을 잘 만들고 한 동네에서 50년을 살 정도로 한결같은 엄마의 비밀을 먼저 발견한 건 혜영이었다. 오래된 일본어 편지를 발견한 그는 언니 혜진에게 기억에도 없는 외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후 네 모녀는 교토로 향한다.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온 한채아는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저예산이고 분량을 떠나 이야기 자체가 예뻤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일상적이면서 자극적이지 않은 맛, 평범하지만 각자 다른 결이 녹아든 시나리오였다”며 “실제 감독님의 경험이 녹아 있어서 인지 사실적인 감정이 차오르는 촬영 현장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군예능을 통해 강단있는 한채아의 모습을 기억한 ‘한참 어린’ 감독은 부산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자란 그에게 자신의 기억들을 수다로 풀어냈다.

“현실적인 언니의 모습이 잘 어울릴것 같다”는 러브콜과 함께 시작된 ‘교토에서 온 편지’는 한채아가 가진 연기적 본능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방송에서 소비된 털털한 성격과 매력적인 외모 뒤에 드라마와 다수의 영화에서 발휘됐던 배우로서의 욕심이 스크린에 가득 차 있다. 그가 맡은 혜진은 단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집 근처 매장에서 근무하며 사실상 생계를 책임진다.

“잠깐이지만 손님에게 ‘단골이니까 잘해 드릴게’라며 제가 영업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상대 배우분이 실제 감독님의 친언니였어요.(웃음)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가족의 기둥이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감이 오더라고요. 저 역시 친오빠가 또래보다 일찍 결혼한 후 계속 일하다가 늦게 시집을 가서인지 그 감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했고요. ” 

어린시절 생이별한 엄마에 대한 사무침, 그 아픔을 처음으로 알게 된 딸들의 이야기는 ‘이 땅의 모든 엄마와 딸’이란 교집합으로 심금을 울린다. 촬영차 오랜만에 방문한 영도는 한채아에게도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즐거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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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과정 15기 김민주 감독이 실제 일본인인 외할머니와 어릴 적 생이별한 어머니의 삶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교토에서 온 편지’는 부산 영도에서 모든 촬영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판씨네마(주))

그는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했을 정도라면서 “나 역시 딸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여러모로 공감하며 찍은 소중한 작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혜진은 서울로 발령난 남자친구의 러브콜도 마다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동생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외국인 선원이자 매장에 온 손님과 더듬더듬 소통하는 모습이나 각자의 이유로 외면했던 가족사에 정면으로 응시하는 서사는 한국과 일본의 아픈 역사가 관통한다.

돈 벌러 일본에 온 한국인이 유독 무시와 차별을 당하던 그 시대 외할머니는 한국 남자를 사랑해 엄마를 낳았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버림받았다. 어린 딸 만큼은 동등하게 키우고 싶어서 부녀가 먼저 밀항선을 타고 귀국한게 화근이었다. 한일왕래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10년만에 도착한 편지의 마지막 발송지는 교토의 한 정신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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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능숙한 사투리로 의외의 매력을 발산하는 그는 “촬영 장소인 집이 너무 예쁘고 좋더라.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이라 그 곳에서 동료 배우들끼리 도시락을 자주 먹었을 정도”라며 남다른 애정을 나타냈다.(사진제공= 판씨네마(주))

부산에 와서도 일본 혼혈이었던 어린 엄마는 입을 닫았다. 일본어를 지우며 철저히 한국인으로, 그렇게 50년을 살았다. 

그런 엄마가 교토에서 “오까상(おかあさん?어머니)”이라 외치며 흐느끼는 모습은 결국 국적을 떠나 늘 마음이 향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된다.

“우리 엄마가 늘 경상도 특유의 츤데레 성격이라 서운한 게 많았어요. 그런데 제 딸에게 저 역시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후회요? 조금 더 어리고 잘 나갈 때 다양한 활동을 계속 했다면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일 거예요. 감정적으로 힘들고 정착되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 직업을 잃지 않았고 지금의 저에게 맞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요즘이 정말 좋아요. 이 영화처럼요.” 

결혼 후 출산을 겪은 배우들에게 들어오는 고정된 역할, 대세로 떠오른 관찰 예능 섭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더이상 좀 더 예쁘기 위해, 더 잘 나가기 위한 결정보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며 많은 걸 내려놓게 됐다”고 엷게 미소지었다.

“결혼 후 8개월간 시댁에서 살았는데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시아버지에게 갔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서운하기 보다는 이게 내 현실이란 걸 직시하게 됐다”는 한채아는 “데뷔 때는 늘 돋보이고 싶었는데 인형처럼 예쁘지 않아도 이게 내 모습인 걸 인정하니 편해졌다. 물론 피부관리와 운동도 하지만 내 나이에 맞는 걸 하지 더 어리거나 예쁘게 보이기위해 무리하지 않는 편”이라고 고백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님께 되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디렉션을 주십사 부탁드렸어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도 했지만 제가 감을 잃을 수도 있는거니까요. 다행히 그런 면이 잘 맞는 현장이었고 정말 행복한 촬영이었죠. 다시금 이런 기회가 저에게 또 왔으면 합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