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예스맨의 눈물下] 승무원 감정노동, 해결책 없나

김아영 기자
입력일 2023-12-04 05:00 수정일 2023-12-04 10:57 발행일 2023-12-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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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폭언 시 업무 중단 권리 보장
기내선 분리 조치·승객 사과도 없어
승무원 ‘승객 안전 지키는 일’ 강조
처벌 상향·세부 매뉴얼 의무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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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승객들이 탑승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착륙 직전 출입문이 열린 채 비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연합뉴스)

<편집자주> 엔데믹 이후 항공사 국제선 여객사업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노선 재개로 승객이 늘자 항공사들도 인력 확충에 나섰다. 대표적인 직군이 객실 승무원이다. 이들은 항공사 전체 인력 중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부푼 꿈을 안고 승무원이 됐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진상 승객들이 상당해서다. 여객 수가 회복되면서 기내 소란행위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다. 객실 승무원들의 노동강도는 덩달아 심해졌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이들은 항공사가 정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민을 함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이 처한 현실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은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됐다. 근로자가 고객에게 폭언이나 폭행 등을 당하면 사업주가 업무를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바꾸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어기면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시행 5년이 지나도록 근로자들은 법안 효력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지난 10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58.8%)은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이후에도 회사가 민원인 갑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원인 갑질이 얼마나 심각하냐는 질문에 ‘심각하다’고 답변한 비율은 무려 83.9%에 달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소용없어”

항공사 객실 승무원의 반응도 비슷하다. 3년 차 객실 승무원인 A씨는 비행 중 승객 폭언을 겪어 사무장에게 보고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사무장에게 승객의 폭언에 대해 보고했지만, 비행이 끝날 때까지 해당 승객을 담당했고 (비행)이후에도 사무장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내는 폐쇄된 공간이니 감정적인 상태의 승객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면서 “폭력까지 이어지면 당연히 착륙 후 공항 경찰대에 인도하지만, 그 정도 수준이 아니고서야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해당 법안 효력에 대해 지적하며 보완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노무법인 돌꽃 김유경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제2항에서 고객 등의 폭언 시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사업주가 이를 거부할 경우 과태료 수준이 매우 낮고 무엇보다 여전히 업무 중단이 가능하다는 법적 장치에 대한 인식도 낮다”며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기본적으로 문제 고객에 대한 직접 처벌이 아닌 사업주의 각종 의무를 규정한 법이므로 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의무 위반 시 처벌 수준을 높이고 해당 법에서 정한 매뉴얼 제정 등에 대해서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은?

객실 승무원들은 현실적이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2년 동안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다 공황장애를 얻고 최근 퇴사한 B씨는 “회사에 이야기해도 바뀌는 것 없이 무례한 승객들을 상대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며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를 실행해 (객실 승무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승무원 직무에 대한 역할을 부각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의 출발이라고 설명한다.

이정훈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 센터장은 “승무원의 경우 직업의 직무, 역할에 대해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고 나서 비행 중에 승객들의 불편 사항, 식사 등 편의를 돕는 일종의 전문성이 있는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라며 “과거부터 만연 시 됐던 친절하고, 용모 우선적인 (직무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후에는 승무원 직무가 어떤 역할인지 조금 더 부각될 필요가 있고, 항공사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홍보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은 또 승객 처벌 매뉴얼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비행기 난동으로 뉴스에 나온 사례들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범죄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하지만, 그런 수위가 아닌 일반적인 응대 과정에서 발생한 부당한 경우에도 기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처리할 필요가 있다”며 “항공사 매뉴얼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항공사 차원에서 응대 담당자 교체 등의 세부적인 매뉴얼이 나오고, 실행해야 한다”고 했다.

김아영 기자 ayki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