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폐배터리 필름 옷감으로 부활하다"

전화평 기자
입력일 2023-09-11 07:00 수정일 2023-09-11 07:00 발행일 2023-09-1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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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ESG 섬유 기업 라잇루트 '신민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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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 분리막을 통해 제작되는 재활용 소재 텍스닉 브로셔 이미지.(사진=라잇루트)

패션업계에 ESG 열풍이 불고 있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는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패션업계 역시 각종 섬유를 친환경 소재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섬유산업은 인간 생존에 필수 산업이지만 국내 탄소배출량의 10%, 미세플라스틱 발생량의 35% 가량을 차지하는 오염산업으로 분류된다. 패션업계에서 ESG 경영 행보를 강화하는 이유다.

이에 스타트업 라잇루트가 패션업계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라잇루트가 시대적 흐름과 기업이 원하는 가성비에 맞는 의류, 가방 등 소재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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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라잇루트 대표.(사진=라잇루트)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는 “라잇루트는 폐기물을 재활용해 섬유 소재를 개발하는 업사이클 기업”이라며 “정확히는 이차전치 분리막으로 고기능성 소재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라잇루트는 폐배터리 분리막(필름)을 활용해 의류, 가방 등 소재를 만드는 기업이다. 신 대표가 분리막과 기능성 소재가 비슷한 구조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해 해당 기술을 개발했다. 이 공정을 거친 섬유는 텍스닉(TEXNIC)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IT 전시회 ‘CES 2022’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바 있다. 라잇루트의 기술이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신 대표는 “산업용에서 섬유소재로 다시 사용하기 위해 분리막과 섬유를 결합시키는 게 관건”이었다며 “몇몇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해 고어텍스와 같은 기능성 원단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대표의 말처럼 섬유와 분리막은 쉽게 결합되지 않는다. 폐배터리 분리막 표면이 매끄러워 섬유와 쉽게 합쳐지지 않는 것이다. 라잇루트는 이를 위해 분리막의 표면을 가공해 거칠게 만들며 섬유와 분리막을 완벽히 결합했다.

온도도 문제였다. 일반적인 섬유는 소재간 결합을 위해 150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분리막은 120도에서 경화된다. 저온에서 결합을 시키는 게 관건인 셈이다. 신 대표는 낮은 온도에서 섬유와 분리막이 잘 결합되는 저온 접착 기술을 개발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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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 재활용.(사진=iStock)

신 대표는 “텍스닉 이전에 진행했던 사업이 의류 쪽이다 보니 소재에 대한 지식은 갖고 있었다”며 “폐배터리 관련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하며 찾아보고, 실험하며 부딪혔다”고 밝혔다.

텍스닉은 환경과 가격 모두 생각한 가성비 소재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친환경 제품은 높은 원가로 인해 판매가도 함께 높다. 재활용 소재가 △수거 △선별 △세척 △공정 등 과정을 거치며 가격 역시 상승하기 때문이다. 텍스닉은 몇몇 과정을 줄이며 원가를 대폭 절감했다.

신 대표는 “2차 전지가 제조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분리막으로 제작을 하는 데, 분리막 구조를 그대로 보존해 별도 처리를 하지 않더라도 투습, 방습, 방풍 기능을 제공한다”며 “SK아이이테크놀로지 같은 기업이 라잇루트에 분리막을 제공할 때도 원하는 규격에 맞춰줘서 일반 폐기물 업체처럼 수거, 선별 과정들도 건너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ESG가 수익성이 없다고 평가되는 시기도 있었으나 최근 전세계에서 환경을 위한 정책이 매년 나오고 있는 만큼 친환경 재활용 소재로의 전환은 시장의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2차 전지 분리막으로 소재를 만드는 곳은 라잇루트가 유일하다. 폐배터리 시장이 성장할수록 라잇루트의 경쟁력도 함께 오르는 셈이다. 폐배터리 추출 기술이 발전할수록 원가가 절감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4000억원 규모였던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30년 12조원, 2050년 60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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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닉 소재 구조를 3D로 구현한 이미지.(사진=라잇루트)

신 대표는 “원재료 조달은 걱정이 없을 정도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며 “라잇루트가 2차 전지 분리막을 다 재활용하려면 거의 몇 조 가치의 기업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 정도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공장이었다. 소재가 개발되며 상용화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이를 양산할 수 있는 시설이 없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분리막과 섬유의 저온접착기술을 적용시킬 수 있는 기계가 없었다. 지난 2년간 최고기술책임자(CTO)와 기계 개발에 주력한 이유다.

현재 라잇루트은 누적 투자금액 25억원이다. 스타트업 라운드는 프리시리즈A다. 내년 상반기 매출 성장을 이끌어내면 다음 라운드 투자를 준비할 계획이다. 신 대표는 “현재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며 “매출 성장과 함께 다음 라운드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에는 삼성물산의 ‘빈폴골프’가 라잇루트의 텍스닉을 활용해 골프 가방을 출시했다. 업계에 따르면 해당 제품은 필요한 기능은 전부 갖추면서도 소재 무게가 가벼워 공장 작업 효율을 높였다. 6월에는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제로그램’의 제품에도 텍스닉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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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닉 소재로 제작된 빈폴골프 제품 라인.(사진=라잇루트)
최근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와 컨택 중이다. 발렌시아가가 재활용 소재를 모색하던 중 텍스택을 접한 것이다. 국내 기업 중 발렌시아가의 재활용 소재 파이널 리스트에 올라간 것은 라잇루트가 유일하다. 현재는 채택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신 대표는 2021년 택스닉이 론칭한 이후 이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책임감’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이전에는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착을 많이 했던 사람이었다. 이전 사업은 투자를 받을 생각도 없었다”며 “코로나 시기에 팀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상황을 접하다 보니 회사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임직원들에게 책임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라잇루트는 오는 15일 택스닉 등 소재의 대량 양산을 시작한다. 빈폴, 제로그램 등 기업과 협업하며 쌓인 노하우를 토대로 고객들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양산하겠다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글로벌 넘버 1 업사이클 섬유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며 “5년 후에는 폐배터리 분리막만이 아니라 다양한 섬유 소재를 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패션 업계에서 리사이클 소재를 사용해야 되는 게 필수가 되면서 니즈들이 많을 텐데 이런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ESG 파트너로서 성장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패션 외에도 시트 등에 사용되는 자동차 소재 산업까지 확장해 전반적인 산업에서 라잇루트의 소재가 사용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편 라잇루트는 텍스닉 소재 출시 기념 오프라인 쇼룸 ‘Break the norm’을 다음달 16일부터 3주간 성수동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전화평 기자 peace20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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