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 시니어] 요정에서 사찰로… '무소유' 깊은 뜻 아로새기다

정운일 명예기자
입력일 2023-08-24 13:18 수정일 2023-08-24 15:18 발행일 2023-08-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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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탐방> 서울 성북동 '길상사'
길상사 극락전
길상사 본당. 대원각 당시 사용하던 가옥을 전각으로 만들었다.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로 가는 길은 대기업의 커다란 저택과 대사관의 조경을 볼 수 있는 고즈넉한 길로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길상사는 본래 대원각으로 고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16세에 진향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에 입문하여 대원각이라는 음식과 술을 파는 요정의 주인이 되었다.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 절을 짓게 해달라고 법정스님에게 애원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법정을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여 사찰이 되었다.

초대 주지로 청학스님이 취임하여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이란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등록하였다.

1997년 길상사 개원 축사를 김수환 추기경이 하고, 2005년 부처님 오신 날 저녁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들을 초대해 길상음악회를 열어 불교와 천주교의 종교를 뛰어넘는 만남을 갖게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김영한은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를 노래한 백석 시인을 사랑했다. 그가 기부한 재산은 ‘그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했다 한다.

그녀는 백석 시인의 시에 흰눈 오는 날을 생각하며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 주시오’라는 유언들 남기고 1999년 세상을 떠났다.

그를 기리는 공덕비가 서 있고, 눈 오는 날 유골이 뿌려진 길상헌 뒤뜰에서 백석 시인을 기리며 잠들어 있다.

진영각에 법정 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생전에 사용하던 옷 한 벌과 용품 몇 개 발행한 책이 있고, 문 앞에는 손수 통나무를 잘라 투박하게 만든 나무 의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무소유를 실천하신 흔적이 생생하게 느껴져 존경의 마음이 든다.

정운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