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입법 공백…'무질서' 정당 현수막·유인물 막을 길이 없다

권새나 기자
입력일 2023-08-02 15:43 수정일 2023-08-02 15:53 발행일 2023-08-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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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개정안 국회 법사위서 멈춰…여야 책임 떠넘기기
10월 보궐선거 열리는 강서구가 첫 피해 지역 될 가능성
일선 지자체, 민원으로 강제철거…적극적 실행은 어려워
현수막으로 뒤덮인 사거리<YONHAP NO-1596>
국회 입법 미비로 인해 누구나 선거운동을 위한 현수막 설치가 가능해진 1일 오전 서울 강서구 횡단보도에 걸린 정당 관련 현수막의 모습. (연합)

국회가 공직선거법의 헌법불합치 조항을 시한 내 개정하지 못한 가운데, 원색적인 비방이나 막말을 담은 정당 현수막들이 전국적으로 난립하는 ‘무질서 정치’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선거법의 관련 조항들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법 개정 시한을 올해 7월 31일까지로 정했다. 지난달 여야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현수막 등 시설물 설치 금지 기간을 현행 ‘선거일 전 180일’에서 ‘선거일 전 120일’로 단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선거법 내용 중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법 개정 시한을 넘긴 것이다.

여야는 입법 공백을 초래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다. 법사위 정개특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일 기자회견에서 “입법 공백은 전적으로 국민의힘과 김도읍 법사위원장의 책임”이라며 “국민들께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자구심사 과정에서 이견이 노출돼 처리하지 못한 법안을 두고 국민의힘이 책임져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사실관계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이로 인해 개정안이 의결·시행되기 까지는 누구나 금지 기간 없이 자유롭게 현수막을 내걸고 유인물을 뿌릴 수 있게 됐다. 10월 구청장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는 서울 강서구가 현수막 난립의 첫 피해 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에 치러지는 유일한 수도권 재보선인 강서구를 두고 여야가 맞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 강서구는 현역 국회의원 3명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13명에 달하는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이던 김태호 강서구청장의 유죄 판결로 인해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여권에서 아직 공천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여야 지도부는 뒤늦게 8월 임시국회 내 반드시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조항에 대한 이견 해소가 남아 있어 처리 시점은 불투명하다.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민원 때문에 정당 현수막 강제철거에 나서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극적인 실행이 어려운 분위기다. 지자체 조례가 상위법과 충돌하고, 정당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경우 현장 공무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다는 이유다.

인천시는 앞서 지난 5월 옥외광고물 조례를 개정해 지정 게시대에 걸 수 있는 정당현수막을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 이하로 제한했지만, 행정안전부는 상위법 위임이 없어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한편 내년 총선을 8개월여 앞두고 현수막 정치에서도 ‘기득권 공고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성 정치인은 제한 없이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정치 신인은 단 한장의 현수막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상의 정당 현수막은 정당의 활동을 홍보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을 담는데, 대부분 현수막 글자 옆에는 당협·지역위원장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붙는다. 굳이 자신을 알리는 문구를 쓰지 않아도 홍보효과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당협·지역위원장이 아닌 경우에는 아예 정당 현수막을 붙일 수 없다. 정치 신인이 자신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붙이려면 오는 12월12일(선거 120일전)이 돼서야 선거관리위원회에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선거홍보용 현수막 부착 권한을 얻을 수 있다. 그 전에 비정치적인 사안 관련 현수막을 달려고 해도 옥외광고물법상 지자체 허가가 필요하다.

권새나 기자 saen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