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혁신 아니면 죽음이다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3-07-29 07:00 수정일 2023-07-29 07:00 발행일 2023-07-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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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반도체·5G 세계 1등 이끈 황창규의 '황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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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과 초대 국가R&D 전략기획단장, 그리고 KT 회장까지 역임했던 저자가 국내 젊은 리더들에게 전하는 ‘혁신’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2022년 가을 학기에 연세대 경영대학 학년들을 대상으로 7주 간 진행했던 강연록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영’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첨단 기술을 소개하고 이를 어떻게 경영현장에서 활용할 것인가를 알려주었다. 미래 경영자들에게는 도전하고 쟁취하는 삶, 더 큰 도전을 촉구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리든, 도전만큼 값지고 의미 있는 경험은 없다고 강조했다.

◇ 리스크 테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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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혁신을 주도하면 리더가 되고, 혁신을 받아들이면 생존자가 되지만, 혁신을 거부하면 죽음을 맞는다”고 전한다. 그리고 ‘혁신’을 ‘리스크 테이킹’과 동일하게 볼 것을 권한다. 오픈 마인드, 열정과 적극적 태도, 철저한 준비 등 리스크 테이킹 승률을 높이는 방법도 알려준다. 실패를 용인해 주는 문화도 강조한다. 1등 자리를 지키는 데도 리스크 테이킹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 스스로도 “임원이 아닌 개발자로 일본과 승부를 하고 싶다”며 부장직으로 삼성에 입사하는 리스크를 선택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투자를 이끌어낸 일화도 소개한다. 일본의 도시바가 조인트벤처로 유혹했을 때 그는 “미래의 새끼 호랑이를 없애버리려는 계획”이라며 반대했다. 반도체 라인 하나에 1조 원, 높은 수율의 반도체를 만들기까지 3년 이상이 걸리던 때였다.

이건희 회장은 저자의 패기를 믿고 독자투자를 결정한다. “지금 어렵다고 투자를 않으면 우린 언제 글로벌 1등을 해보겠나”라며 용기를 주었다. 1년 만에 플래시 메모리 업계 1위는 삼성 차지가 되었다. 현재 삼성의 12인치 20개 반도체 라인 가운데 초기 라인은 2001년 반도체 최악의 불황기에 지어졌다. 저자는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 된 것은 당시 이 회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 파괴적 혁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파괴적 혁신’을 주창했다. 그는 기존의 강점을 보강하는 ‘존속적 혁신’ 보다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은 1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저자의 ‘황의 법칙’도 파괴적 혁신의 일환이었다. 그는 “무어의 법칙을 따른 기업들보다 황의 법칙을 따라 빠르게 혁신한 반도체 기업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전한다.

인텔 등에 비해 존재감이 없던 삼성이 2002년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1위로 단숨에 올라선 것도 파괴적 혁신의 결과였다. 저자는 “파괴적 혁신은 자기 부정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가솔린 자동차를 부정해야 전기차가 보이고, PC 시장의 대세 CPU를 부정해 봐야 모바일 시장의 플래시메모리 시장이 보인다는 것이다. 자기부정을 거듭하며 파괴적 혁신을 해왔기에 지금의 삼성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KT 시절의 기가 인터넷과 5G 사례를 파괴적 혁신의 또 다른 사례로 든다. B2B 영역의 케이뱅크 역시 성공 사례로 소개한다. 그러면서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가 말했던 ‘혁신의 방법론’ 세 가지를 언급한다. 기존의 관행을 파괴하고, 기술의 발전을 연속적으로 보지 말며, 기술의 변곡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파괴적 혁신을 이루는 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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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 이건희(왼쪽) 회장의 2001년 담대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 미래의 예측

저자는 “미래 예측이란, 다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며, 리더의 역할은 수 많은 가정과 경우의 수를 놓고 직원들을 설득해 다리를 건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혁신 제품은 고객 관점에서 이해하고 앞선 기술을 활용한 개발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시각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경쟁력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당시 반도체 플래시메모리는 ‘노아’와 ‘낸드’로 나뉘었는데, 저자는 직렬형의 ‘낸드’가 크기는 작으면서 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밀어붙였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 ‘속도’보다는 ‘용량’이 훨씬 더 중요해 질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가격 결정과 수요자 선택의 주도권을 쥘 제품이 삼성에게 필요하다면서, 낸드 플래시에 그런 미래가 있다고 보았다.

2000년대 초 인텔에 노아플래시를 의존하던 노키아에게 퓨전 칩인 ‘원낸드’를 3분의 1 가격에 공급한 경험도 삼성이 이후 플래시 메모리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올리는 데 기여했다. 아이팟을 내놓기 직전에 HDD를 고집하던 스티브 잡스에게 조용히 플래시메모리가 장착된 제품을 보내 결국 “전량을 구매할 테니 가격을 깎아달라”고 읍소하게 만든 이야기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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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왼쪽)는 애플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 칩을 삼성전자에 전량 몰아줌으로써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뤄냈다.
◇ 기술의 선점

저자는 “기술 선점이 곧 미래 선점”이라고 강조한다. 기술을 선점하려면 무엇보다 인프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을 선점하면 기술적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특허’와 ‘표준화’를 통해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소비자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능력도 기술 선점의 장점이라고 강조한다.

LTE보다 20배 빠른 5G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로 자율주행, 원격 시술 등 산업 전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을 그는 좋은 예로 들었다. 에릭슨, 노키아, 퀄컴, 인텔, 삼성전자 등 5개 글로벌 기업의 컨소시엄을 리드해 5G 표준화 그룹을 구축하고 이 컨소시엄에서 만든 5G 표준의 80%가 국제 표준에 반영케 한 소중한 경험도 공유한다.

그는 나아가 “6G 시대가 되면 ‘디지털 트윈’이라는 파괴적 기술이 지구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는 시대가 될 지 모른다”며 “그런 시대가 되면 장비 모두가 소프트웨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면서 “패스트 플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빠르게 성장한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며 미래 경영자들에게 “여러분들에게는 1등을 해 본 선배들이 있다”며 자부심과 함께 도전의식을 촉구했다.

◇ 위기의 대응

저자는 “역사적으로 위기는 꼭 위기로만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14세기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흑사병이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르네상스를 연 것을 예로 들었다. 코로나 펜데믹 속에서도 원격 의료, 원격 수업, 원격 근로가 빠르게 정착되었고 비대면 로봇 기술 도입도 한층 앞당겨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술로 위기를 극복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려면 위기를 극복할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모두를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세 가지 질문에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2018년 2차 메르스 사태 때 이전의 경험을 살려 KT가 만들어 놓았던 GEPP(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플랫폼)를 예로 든다. 통신 3사가 제공한 로밍 데이터를 근거로 환자들 경로를 파악한 덕분에 2차 메르스 때는 환자가 한 명 밖에 나오지 않았고 38일만에 종결됐다. 그는 “위기를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로 삼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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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5G 통신기술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책임질 융합 기술이라고 단언했다.
◇ 융합의 실현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대표된다. 저자도 “4차 산업혁명의 시작과 끝은 ‘융합’”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말을 타고 다니다 수레로 갈아타는 정도의 ‘물리적 융합’보다는 산업을 완전히 탈바꿈시킬 수 있는 ‘화학적 융합’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5G를 화학적 융합의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초저지연성과 고신뢰성의 5G가 상용화되면 IoT 센서, AI 비전 카메라, 자율 로봇 같은 기술과 제어 시스템 사용이 가능해지고 효율성과 생산성이 증대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에너지와 IT 기술을 접목해 한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에너지 플랫폼 K-MEG도 스마트 에너지 그리드를 구현하는 데 획기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한다.

저자는 화학적 융합의 전제 조건 세 가지를 제시한다. 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 새로운 상상력 발휘, 그리고 기술 파급의 크랙 뛰어넘기다. 아울러 그는 “수많은 기술이 융합되었을 때 비로소 시너지가 발생한다”면서, 탄탄하지만 벽이 없는 조직을 시너지의 필수조건으로 각별히 강조했다.

◇ 혁신을 이루는 경영자의 자세

피터 드러커는 “변화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어제의 이론”이라고 했다. 저자는 파괴적 혁신이 성공하려면 기술과 조직의 발전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직에서 ‘어제의 이론’은 기득권을 가진 집단의 거부 또는 방해다. 그래서 조직 혁신에서 CEO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강조한다. KT에 있을 때 6년 동안 5500명의 직원들과 420회나 함께 밥을 먹은 이유다.

‘비전’은 조직의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KT 시절 적자에 허덕이던 인터넷 사업을 부활시킨 것도 비전의 힘 덕분이었다고 회고한다. 다음은 ‘위임’이다.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했다.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위임과 소통의 효과 중 하나가 협력이라며 “일찍 할 수록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질문’이다. 준비되고 겸손한 사람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키워드는 ‘포용’이다. “경영자는 우산을 들고 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려워 말고 도전해 보자”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도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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